겨울의 눈

by 이공칠

그거 알아? 유난히 기분 좋은 아침이 있는 거? 뭐 조금은 쌀쌀하고 추운 겨울이지만, 왜 아침에 출근하면서 맡게 되는 겨울 냄새라던가, 서늘한 그늘에서 태양 빛으로 갈 때의 그 따스한 느낌들. 나는 그럴 때가 좋더라고. 그러면 이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서, 버스를 기다리려고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추워서 벌벌 떨더라도 버스를 타고 한 5분 10분만 지나면, 낮게 뜬 태양이 쫙하고 멋진 카펫을 깔잖아. 그럴 때 느껴지는 따스함과 강렬한 빛들이 나는 좋더라고. 아 이게 겨울이지.



윤석의 말에 주변 동료들은 심드렁하게 반응한다. 윤석은 본인이 느낀 오늘 하루가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윤석이 상사에게 깨져도 막상 크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저 동료들에게 사람 좋은 웃음을 내면서 ‘술이나 한잔하고 털자’라고 말할 뿐이었다. 윤석이 그렇게 동료들과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술집에서 대로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했을 때, 지나가는 사람과 어깨가 부딪치고, 윤석은 그 사람의 힘 때문에 넘어진다. 고개를 올려 그 남자를 바라본다. 평소라면 조심히 넘어갔을 텐데 그날따라 술에 취해서인지 윤석은 큰 소리를 남자에게 뭐라고 소리친다. 윤석은 넘어진 상태에서 남자를 올려 본다. 남자는 검은 코트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써서 눈밖에 보이지 않는다. 윤석은 그 눈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그리곤 언제 술에 취했냐는 듯이 조심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얼른 도망친다. 택시를 타고 나서야 몸이 하나둘씩 아파온다. 엉덩이가 따끔거렸고, 날이 추워서인지 이를 덜덜 떤다. 고개를 살짝 돌려 창밖을 괜스레 쳐다보고 안도한다. 그 순간 힘이 빠지고, 졸리기 시작한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무사히 집 안임을 확인한다.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감기나 독감인 줄 알았다. 윤석은 전화로 병가를 내고 쉬기로 한다. 수화기 너머 윤석의 태도에 불평을 내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윤석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장에 몸이 힘들고 떨릴 뿐이다. 윤석은 전화를 마치고 나서 침대로 다시 돌아가 이불을 덮는다. 머리끝까지 덮어 열을 내려고 한다. 치아가 떨리고, 털이 곤두선 느낌이 들지만, 이렇게 이불속에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윤석이 눈을 감고 기다리려고 한다. 눈을 감으니 검은 세상에 윤석을 노려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 그 눈이다. 어젯밤에 윤석이 본 그 차거운 눈이다. 두 눈동자가 윤석을 지긋이 바라본다. 윤석은 겁이 나서 눈을 뜬다. 괜히 몸이 차가운 것 같아 웅크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추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눈을 감으려 하니 그 눈동자가 무서워 어찌할 줄을 모른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목이 마르고 잔기침이 나온다. 콜록- 콜록- 윤석은 잔기침을 하면서 본인의 몸을 천천히 느낀다. 옆으로 웅크려 자서 그런지 한쪽 어깨가 아프다. 이불 냄새와 아플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섞인다. 그러나 몸은 따뜻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여기까지 윤석은 나쁘지 않은 기분에 옅은 미소를 띤다. 생각들이 하나둘씩 속도를 내어 현실을 따라잡으니, 윤석은 온몸의 감각을 하나둘씩 더 생생히 느끼게 된다. 이제 이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까무러치게 놀라 번쩍 일어 난다. 눈을 깜빡이며 현실로 온전히 돌아오려 한다. 옆에 있던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니 한 시간 정도 지난 상태이다. 그제야 윤석의 두려움이 사라졌다. 다시 누운 채로 긴장하면서 눈을 감는다. 방금 전까지 괴롭히던 그 시선은 느껴지지도 생각나지도 않는다. 억지로 기억해보려고 하니, 그저 윤석이 넘어졌을 때 남자의 회색 바지와 검은 구두, 코트 밑자락만 떠오를 뿐이다. 윤석은 자세를 고쳐 바로 눕는다. 어깨가 아파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시 스르륵 잠이 든다.



그렇게 다시 윤석이 눈을 뜨니, 해가 저물어 간다. 창밖에 하늘은 익숙한 얕은 파란색보다는 낮은 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주황빛으로 가득하다. 윤석은 오래 자서 그런지 개운한 표정을 하고 일어 난다. 배가 고파 무언가를 먹으려 부엌과 냉장고를 살펴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요즘은 핸드폰 어플로 안 되는 것이 없다. 윤석은 그렇게 생각하고 핸드폰을 열지만, 이내 본인이 오늘은 하루 종일 집안에 누워만 있다고 생각해 바깥에 바람 좀 쐴 겸 저녁거리를 사러 나간다. 편의점까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하늘을 잠시 보면서 어두워지기 전까지 산책하러 돌아간다. 산책로엔 윤석뿐 아니라 러닝을 하러 나온 사람들과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이 제각기 가는 길을 따라나선다. 산책로 옆엔 하천의 물이 흐른다. 낮게 깔린 햇빛 덕분에 윤슬이 그 겨울의 분위기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윤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겨울이다. 텔레비전이나 달력에서 보는 그런 호들갑 떠는 겨울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공기와 사람들의 분위기 속에서 겨울이 왔음을 윤석은 다시 한번 느낀다. 윤석의 불안들이 저 달리는 비둘기 떼와 우아하게 날개를 펼치며 내려앉은 백로를 통해 모두 잊게 된다. 해가 더 저물 때 즈음 윤석은 편의점에 도착한다. 재빨리 물건을 고른다. 띠링- 편의점에 문이 열린다. 윤석은 물건을 모두 고르고 계산대로 향한다. 고개를 살짝 올리고,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사람이 느껴진다. 검은 구두와 회색 바지이다. 키가 커서인지 종아리까지 올려 보면 검정 코트의 끝자락이 보인다.



다시 한번 등줄기가 오싹하다. 윤석의 뒷골에 차가운 냉기가 돌며 차거운 식은땀이 흐른다. 그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담배 한 갑을 사고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간다. 띠링- 윤석은 참았던 숨을 내쉰다. 그리고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그 사람이다. 윤석은 잊었던 시선이 다시금 생경해진다. 아니, 그 시선은 사라 젔지만, 윤석이 느낀 그 감정은 그대로 다시 찾아온다. 잔기침이 나온다. 콜록- 콜록- 계산을 마치고, 그 남자가 나갔던 문으로 윤석은 조용하게 나간다. 띠링- 고개를 들어 혹시 모르게 그 남자를 찾는다. 다행히도 보이지 않는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윤석은 겨우 한 걸음 내딘다. 뚜벅- 뚜벅- 구두를 신은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윤석은 어깨가 움츠려 든다. 윤석보다 키가 작은 남자가 윤석을 스쳐지나간다. 윤석의 어깨가 다시 펴진다. 윤석은 빠르게 집으로 향한다.



모든 걸 내팽개치고 다시 침대로 들어간다. 눈을 감고 조용히 웅크린다. 콜록- 콜-록- 마른기침에 물을 마시고 싶지만, 이불 밖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질끈 감은 눈에 힘이 잔뜩 들어 눈을 핀다. 그제야 윤석은 그 상태로 잤던 걸 알게 되었다. 약간의 안도감이 들지만, 이내 다시 잠들기엔 모든 졸음이 사라 젔다. 윤석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핸드폰의 불빛이 깜빡 깜빡 윤석은 계속 시간을 확인하며 잠들기를 희망한다. 다시 눈을 뜨니 새벽 4시 30분이다. 간신히 30분 정도 잤다.



출근을 하니, 옆 자리 동료가 물어본다. 괜스레 밝은 얼굴이 얄밉다. 윤석은 괜찮다고 말하며 밀린 일들을 처리한다. 사람들 속에 묘하게 안정감을 다시 찾는다. 그 남자, 그 시선이 이곳까지 따라올 수 없으니. 주변 동료가 다시 말을 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인데 무엇을 할 거냐고. 그러면서 동료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신나게 떠든다. 며칠 전 윤석의 모습이 겹쳐 보이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윤석은 쓴웃음을 짓는다.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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