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빈, 동양북스
나도 남들처럼 주말만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다면, 평일은 회사 가는 날이고 주말은 쉬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이러려고 워라밸 워라밸 한 걸까. 한 달 반 전부터 새로운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피곤하다는 이유로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서부터 넷플릭스만 들여다보고, 주말은 잘됐다 하며 더 늘어져서 시즌제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사실 새로운 환경 어쩌고 하는 것은 다 핑계다. 이직 전부터 매일 티비를 보는 게 일상이어서 이직 때문에 이사할 때 엄마가 제일 먼저 물어본 것도 "티비 사야되지 않니" 였다. 심지어 소름돋게 똑같은 말을 남편한테 들은 참이었다. 그렇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보다 한국 티비 프로그램을 더 잘 알고 있을 정도로 나는 티비를 즐겨 본다. 나에게는 티비 보는 시간이 몸도 피곤하지 않으면서 머리도 덜 쓰는 상태로 보내는 휴식시간이자 취미이다. 그런데 이 휴식도 좀 정해놓고 쉬면 '정말 잘 쉬었다! 재미있었다!' 라고 즐길 수 있을텐데, 너무 분별 없이 하다보니 쉬는 것도 아니오 안 쉬는 것도 아니오 결국은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은 그렇게 노래를 불러 댔던 워라밸로 달성한 저녁 시간동안, 회사에서 고생하다 왔으니 집에 와서는 끝내주게 숨 쉬고 끝내주게 늘어져 있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하루를 이모작하면 평일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하루 24시간에서, 출근해서 일하는 시간 9시간, 수면 시간 8시간, 그리고 출퇴근이나 집안일 등을 하는 시간을 빼면 적어도 3-4 시간 정도의 저녁 시간이 남게 된다. 3-4 시간은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길기도 짧기도 하다. 유튜브를 보면서 아무렇게나 보낸다면 언제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짧게 느껴질 것인데, 그것은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의식하면서 보낸다면 의외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긴 시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어떻게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생각을 바꾸는 데에 해답이 있다. 저녁 시간을 회사에서 고생하다 온 내가 늘어져 있을 시간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이라고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평일은 회사 가는 날, 주말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날' 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고, 주말만 목 빠져라 기다리던 삶에서 해방될 수 있다. 작가분도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책에서 말하셨지만, 나도 그에 못지 않은 '하고잡이 (경상도 방언)' 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는 데 소극적이었고, 자연스레 매일 저녁과 주말은, 다음 날 혹은 다음 주에 출근할 나를 위해 스스로를 회복하는 시간으로만 기능했다. 피곤하다는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내가 나를 위해 즐거운 것을 한다는 사고방식이라면, 어쩌면 나도 하루를 이모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저녁 시간을 알차게 꾸며본다면 어떨까.
저녁 시간을 어떻게 계획할까. 작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마음에 힘을 빼고 가볍게, 즐겁게,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를 제안하며, 정말 실천하고 싶은 일일수록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버리고 의식해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나무꾼 이었던 혜능 대사가 '무심한 상태' 로 나무를 해다 파는 날은 마음이 가벼웠는데 '의욕이 앞선' 날은 오히려 지루하고 힘이 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길에서 한 스님이 읽는 금강경 글귀를 듣고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나는 우선 저녁에 쓸 수 있는 시간을 파악하고 (퇴근해서 저녁먹고 집안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편하게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와 업무 관련 공부였다. 따로 목표가 있다면 큰 목표와 그에 따르는 단기 세부 목표를 세워 달성하는 것이 눈에 보이도록 하는 게 계속 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의 시간 계획은 그 전 날 취침 전에 작성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작가의 추천대로 자기 전에 작성해보니 다음 날 퇴근 후에 헤매는 일 없이 계획대로 실천만 하면 되니 오히려 편했다.
나가 놀더라도 숙제는 미리 해놓고 나가자. 최근에는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니까 라며 사무실에 출근하는 날은 대충 시간만 채우듯 떠들다가 일하다가 하고, 그런 탓에 퇴근 후나 주말에 일을 해서 마감일을 맞추려고 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업무 시간과 내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퇴근 후나 주말에 더 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회사에서 점점 더 늘어져 있는 상태가 됐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스트레스가 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 대부분이 예측 가능한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듯, 나 또한 해결되지 못한 일이 쌓여가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나만의 저녁 루틴을 규칙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남은 업무를 집에 끌고 오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온전히 회사 일에 집중하여 업무 시간 내에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 결국 하루를 이모작 하는 방법은 단순히 저녁 시간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낮 시간에도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해야 할 것을 잘 해내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일주일간 저녁 루틴을 만들자 낮 시간 동안 회사에서 정신 차리고 일하게 되었으니, 진정한 워크 라이프 밸런스, 공과 사의 구분이 되게 되었다.
저녁 시간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자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작가는 저녁 시간 동안의 작은 성공 경험들이 모여 자신감이 되었고, 그것들이 다음 날 하루를 시작하는 즐거운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아침에 아무 생각없이 전철을 타고, 아무 생각없이 웹서핑을 하고, 그냥 그렇게 퇴근해서 아무 생각없이 저녁 시간을 흘려보내면 당연히 그 다음 날은 출근하기 싫어진다. 유튜브만 들여다 보고 있는 저녁에는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되는 상황을 한탄하는 건 모두 같지 않을까. 그러나 저녁 루틴을 만들어 시간을 계획해 사용하면, 내가 계획해서 실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기 주도적인 마음이 들고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내 계획대로 잘 움직일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시 말해 회사에 출근해서는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더라도 집에 가서 만큼은 내 계획대로 해야지 라는 마음. 그 마음이 점점 밝아지면 회사에 출근해서도 시키는 일을 한다는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내어 한다는 마음이 될 것이다. 일상에서 능동적으로 생활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우리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일 하고 퇴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해나간다는 느낌을 갖기가 어렵다. 그러나 저녁 시간 만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정한 만큼 꾸준히 해본다면,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자기 긍정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하루하루를 대하는 삶의 태도가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