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김승욱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by 혜안
조용한 여름날 오후에 어딘가 멀리서 아무것도 모른 채 터뜨리는 웃음소리.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윌리엄 스토너는 1891년 미주리주 중부 분빌 마을 근처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땅과 흙 위에서 삶을 일구어가는 부모님을 보고 자란 그는 1910년 미주리 대학에 입학해 농과대학에 다닐 예정 이었지만, 영문학 수업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찾게 된다. 스토너는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평생 조교수였고, 그의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결혼 생활은 마지못해 이어나가는 연극 같았다. 또 그는 딸의 엄숙하고도 깊은 영혼을 지켜줄 수 없었고,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여자와는 끝내 함께할 수 없었다. 이 책은 그런 윌리엄 스토너의 삶을 조용하고 섬세하게 이야기해 나간다.


미주리주에 가면 윌리엄 스토너의 묘비가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끔 이게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의 인생이 너무나도 현실에서 볼 법했기 때문이다. 스토너에게는 그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주변 사람들이 몇 있는데, 아내인 이디스와, 동료 교수인 로맥스, 세미나 참가 학생인 찰스 워커가 그런 사람들이다. 이디스는 가족이라는 끈으로 엮여있지만 결코 서로의 삶에 유익하지 않은, 오히려 서로를 갉아먹는 존재이다. 그녀의 충동적이고 불안한 성격은 그의 삶에 부담을 더하고, 그를 집에서조차 쉴 수 없게 만든다. 로맥스와 찰스 워커는 책을 읽는 나로 하여금 트라우마적 반응을 일으킬 만큼 피하고 싶은 부류로 묘사된다. 로맥스는 왜곡된 연민을 강요하는 동료 교사이고, 찰스 워커는 내가 뭘 어떻게 하든 나만 이상한 사람 만드는 데에 재주가 있는 궤변론자 학생이다. 또 핀치, 그레이스, 그리고 캐서린과 같이 스토너를 지지하고 그로 하여금 애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애정을 느끼고 아끼는 사람들은 그에게 삶의 의지가 되기도 하지만, 끝내 그들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여기고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도 각각 이디스, 로맥스, 워커, 핀치, 그레이스, 그리고 캐서린과 같은 존재들이 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저마다의 이러한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모양의 매듭을 짓기도 풀기도 하면서 이어져 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 윌리엄 스토너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나이가 든 스토너가 캐서린 드리스콜의 책을 구해 보는 장면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이제 자신은 예순 살이 다 되었으므로 그런 열정이나 사랑의 힘을 초월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어떤 것에 열정을 주었던 시절들을 반추해 본다. 지식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시절, 어리석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 그리고 캐서린과 함께 그들만의 우주를 꾸렸던 시간. 그리고 그는 자신이 열정을 주었던 모든 것들이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열정의 시절이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배낭 여행을 다니던 대학 시절, 하루에 몇 시간씩 외국어 공부를 하던 워킹 홀리데이 시절, 책에 빠져 매일같이 도서관에 출퇴근하던 날들, 진정한 사랑을 만나 결혼 한 것도, 다 열정의 시절이었다. 모든 열정의 시절이 좋은 모습으로 끝난 것은 아니더라도, 그럼에도 나는 나의 열정의 시절도 스토너의 열정의 시절도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열정의 시절을 거쳐 지금의 조금 더 무르익은 우리의 모습이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캐서린 드리스콜의 책을 보는 스토너는 서투른 열정을 마구 꺼내쓰던 젊은 날의 그 때와는 달리 조금은 더 노련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열정이나 사랑의 힘을 초월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한편으론 나이와 함께 열정이나 사랑의 힘이 사그라드는 거라면 삶이 무엇을 원동력으로 이어지나 싶다.


처음에는 소극적인 스토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 책은 꽤 정적인 느낌을 주는데, 그 특징은 스토너의 성격에서도 잘 나타난다. 스토너는 로맥스나 찰스 워커의 계속되는 도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다가 결국은 당하기만 한다. 딸 그레이스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슬픔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이디스에게 직접적으로 맞서지는 않는 답답한 모습을 보인다. 그 모습은 캐서린과의 우유부단한 헤어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참으로 고집스러워 보이기 까지 한다. 하지만 책을 다시 읽다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스토너가 중세 문학 강의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했던 말이다. "경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우리의 습관이 우리의 기대치를 결정한 것처럼, 중세 사람들의 기대치도 습관에 의해 결정되었으니까요. 먼저 기본적인 공부를 위해 중세 사람들의 삶과 생각과 글을 결정했던 마음의 습관들을 몇 가지 살펴봅시다・・・・・・." 그렇다. 스토너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땅과 흙에 기대어 삶을 꾸려 나갔던 고생과 굶주림과 억척스러운 인내와 고통에 대한 마음의 습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스토너는 친절하게도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려면, 그의 마음의 습관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을 더 확장해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겠다. 우리가 평소에 이해할 수 없었던 누군가의 생각이나 삶도, 그 사람의 마음의 습관을 이해해야 비로소 실체가 보이는 것이라고.


윌리엄 스토너의 인생은 실패작일까. 스토너는 죽기 전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자신에게 반문한다.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이었지만, 죽기 전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에게 있어 자신의 인생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하는 판단은 결코 의미가 없었다. 나도 그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인생은 그냥 인생 그 자체로 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지위도 따뜻한 가족도 없었지만, 열정을 주고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했고, 하루하루 진심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냈다. 전쟁이라는 상실의 시대에도 그는 굳건하게 자신이 믿는 것을 끈질기게 지켜나갔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그의 인생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스토너의 삶에서 내 삶을 본다. 내 삶도 위대한 삶은 아니다. 그러나 매일 진심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낸다면 그 삶은 충분히 소중하고 의미있는 삶인 것 아닐까. 오늘도 내일도 나는 진심을 다할 뿐이다.


수요일 연재
이전 03화숨결이 바람이 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