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관뒀겠지

by 혜안

나는 현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 하고 있다. 할 줄 아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단 하나, 파이썬 이다. 문과 전공으로 처음 취직했을 때는 해외영업 직무에서 일을 했다. 해외 대리점 발굴 및 관리, 수출 업무, 교육 등을 했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시집을 가서는 현지에서 어카운트 매니저 일을 했다. 직접 고객 방문은 없었지만, 주로 고객 미팅이나 견적 작성 등의 일을 했다. 결혼 하고 몇 년 정도 남편을 지켜보니 남편의 직업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편해보였다. 남의 떡이 더 커보였다고 할까. 업무 시간이 정해져 있는 데다 고객 관리를 해야 되는 일도 없으므로 사람 스트레스가 덜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막연히 부럽다고 생각하다가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에 미국 대학원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공했다. 하지만 데이터 사이언스는 직무 쪽으로는 연이 없었던지 데이터 애널리스트/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데이터 플랫폼을 다루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지금 내리는 결론은, 어느 직업이든 다 힘들다는 거다. 운이 좋아서 할 일이 별로 없는 회사에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일복이 많아 「원년 멤버 전문」인 나는 무얼 하든 고생을 하는 것 같다.


문과생 이었던 내가 공과대학에서 석사를 하고 엔지니어로 일을 하기까지는 우리 남편의 혁혁한 공이 있었다.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찌나 이해가 안 되던지 속상한 마음에 남편을 붙잡고 울기도 했다. 대학원 수업에 필요한 개발 환경 셋업은 어찌나 하나같이 뭐가 잘 안 맞거나 버젼이 충돌하는지... 그럴 때마다 우리의 IT guy 남편은 슈퍼맨처럼 나타나 해결해주곤 했다. 만약 그 때 혼자 해결해야 했었다면 나는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약이 바짝 오른 복어처럼 몸도 마음도 빵 터지기 일보 직전일 때마다 남편이 나를 구해줬다. 물론 남편의 분야와 내 분야는 많이 달라서 세세한 부분은 서로 설명하지 않지만 개발자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은 남편에게 의지했다. 요즘도 비슷하다. 회사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집에 와서 물어보곤 한다. 남편이 들여다봐주는 것만으로도 큰 안심이 된다.


별걸 다 따라한다 싶게 남편을 따라 들어온 이과의 세계는, 가끔은 내 실력 없음 앞에 처참히 무너져 버리는 것 같다가도 가끔은 재미있기도 하다. 이번 주는 처참히 무너지는 주였다. 그래서 남편이 나를 도와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를 되짚어 보게 됐다. 그리고 조금 더 힘내기로 한다. 곧 재미있어 지기를.


곧 수습 기간이 끝나면 사부님이신 남편에게 맛있는 외식이라도 한 끼 대접 해야겠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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