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도 먹고 밤도 먹고

by 혜안

그 시작은 여름 참외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 때는 주말만 되면 에이치마트 라는 한인마트에 갔었다. 하루는 노랗게 익은 참외를 봤는데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 과일이 남편에게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남편이 먹어봤으면 해서 두 알을 사서 나눠 먹었는데 남편에게는 그저 그런 맛 이었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일본으로 주재원 파견을 오게 되면서 부터, 슈퍼에서 보는 갖가지 아시아의 제철 음식들을 먹으려고 신경쓰고 있다. 언제 미국에 돌아갈지 모르지만, 여기 있는 동안은 내가 철마다 먹고 자란 과일이며 간식들을 남편에게도 맛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산책하는 길에 내 머리통 만한 큰 플라타너스 잎을 주웠다.

일본에 온 첫 해 가을 남편은 감을 맛 봤다. 달달하게 잘 익은 단감을 어찌나 맛있어하던지. 올해 여름엔 단물이 줄줄 흐르다 시피 하는 큰 털복숭아도 먹고, 노란 알맹이가 실한 홋카이도산 옥수수는 생선 그릴에 구워서 버터간장 양념을 발라 먹었다. 올해에도 늦여름 부터 보이기 시작한 단감을 한 상자 사서 날마다 한 알 두 알 꺼내 깎아 먹었다.


초가을이 되니 나오기 시작한 새콤달콤하고 과육이 단단한 토키 사과, 한국에서도 자주 보는 후지 사과와 신고배, 서양배의 일종으로 신고배 보다는 과육이 덜 서걱거리지만 훨씬 단맛이 강한 라프랑스 등등 참으로 다양한 과일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저녁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나서 열리는 둘만의 제철 과일 시식회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곧 겨울이 오니까 슈퍼에서 자취를 감출 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지난 주말엔 서둘러 밤을 사왔다. 밤을 쪄서 먹을까 하다가 군밤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밤톨 같은 우리 남편, 올 가을은 구운 햇밤을 먹어보겠구나 하면서. 칼집을 낸 밤을 생선 그릴에 넣고 겉면이 탈 정도로 구워준다. 겉면이 타야 껍질이 잘 벗겨진다.



잘 구워진, 아직도 뜨거운 밤을 급하게 몇 알 까서 남편이랑 나눠 먹는다. 남편 얼굴을 보니 군밤도 성공인 듯하다. 이렇게 또 올 가을 한 철 잘 보낸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모든 맛있는 과일과 간식과, 그걸 키우시고 파시는 분들과, 자연, 그리고 함께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에게 감사하다.


밤이 노랗게 잘 익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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