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치는 날 일찍 일어나야 될 거 같아." 남편이 말한다.
"왜 몇 시까지 가야 되는데?" 내가 묻는다.
"여덟 시 반까지는 입실해야 된대."
"아 그럼 나도 같이 여섯 시에는 일어나야겠다."
다가오는 일요일, 일본어 능력 시험 당일은 여지없이 여섯 시 기상 당첨이다. 나에게는 전철과 버스를 타고 남편을 시험장까지 늦지 않게 무사히 데려다 줄 임무가 있다. 남편이 시험 치는 동안은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시험이 끝나면 다시 남편을 데리고 집까지 오는 것도 포함이다. 남편이 알아서 구글맵을 보고 다녀올 수도 있겠지만 혹시라도 시험치는 데 늦을까봐 평상시에 전철과 버스를 익숙하게 잘 타고 다니는 내가 같이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 부부의 삶은 몇 년에 한 번씩 바뀌는 역할 놀이 같기도 하다. 우리가 미국 살 때만 해도 내가 운전을 잘 못해서 남편은 운전을 해주러 내 출장까지 따라왔었다. 남편은 같이 비행기를 타고 출장지까지 가서 호텔방에서 재택근무를 하다가 내가 마칠 시간만 되면 차로 마중을 나와줬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웬만해서는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맞춰 가는 치과 치료도 어쩌다 나 혼자만 추가 치료를 해야 할 때면 남편이 출근하는 길에 내려주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불평 한 번 없이 나를 태워주곤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내가 대학원 과정을 하는 동안 남편은 직장을 다니며 가계를 책임지고 학비도 도와주었다. 가계에 도움은 못 줄 망정 가끔 한 번씩 뭐가 사고 싶을 때마다 그는 당연히 사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최근에는 역할이 바뀌어, 내가 직장에 다니고 남편은 자신의 일을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다. 가끔 불안할 때가 없다면 거짓말 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직하기 쉬우려면 뭐가 됐든 현재 몸 담은 직장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서일 뿐이고,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우리 생활을 잘 책임지고 싶다.
사실 우리는 한 명씩 따로 두고 보면 어딘가 모자란 거 같기도 하다. 남편이 어딘가를 처음 가기 전에 미리 같이 '전철 타기 연습' 을 해보자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아이고 전철도 같이 따라가야 돼?' 하면 그는 말한다. '누가 출장까지 따라가서 운전 해줬어?' 라고. 결국 우리는 서로의 비교우위 덕분에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며 함께 잘 굴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