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상담을 해주는 티비 방송을 보다가 신혼 초에는 치약 짜는 걸로도 싸운다는 얘기를 당연히들 하는 것 같아 속으로 조금 놀랐다. 얼마나 싸울 게 없으면 치약 짜는 걸로 싸울까 라는 생각도 드는 한편 치약 짜는 것까지 일일이 지적할 만큼 모든 걸 자기 식대로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나 남편도 절대로 물러서고 싶지 않은 상황이 있을 테지만 그럴 때 자기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도 평상시의 생활에서는 굳이 내 식대로 할 것을 상대방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잘 맞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남편은 설거지를 한 후에 식탁이나 조리대를 닦지 않는다. 그래서 식탁에는 먹다 흘린 양념이나 음식 부스러기가 남아 있거나 조리대에는 설거지를 하다 튄 거품이며 물이 묻어 있을 때가 많다. 이럴 때 나는 지적하거나 잔소리 하지 않는다. 내 체력이 남아있다면 남편의 설거지가 끝난 후에 바로 더 치우거나 혹은 너무 피곤하다면 다음 날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중간중간에 뒷정리를 해두는 식이다. 좋은 마음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마무리가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남편은 서랍이나 찬장에서 뭔가를 꺼내고 나서 닫지 않고 그대로 열어두는 편이다. 속으로는 닫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어도 곧바로 말로 내뱉지 않는다. 그냥 아무 말 않고 닫아두고 나중에 생각날 때 한 번 정도 말하는 식이다. 찬장이 다 열려 있어서 머리를 찧을 뻔 했다는 말에 남편은 다음부터 조심하게 된다. 그런다고 해서 서랍을 항상 닫게 되는 건 아니지만 전보다는 횟수가 덜 해진다. 그리고 가끔 그러는 것 정도야 내가 닫는 것도 별로 문제 될 게 없다.
하다못해 빨래를 할 때에도 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배운 우리 집만의 빨래 접기 방식이 있다. 바지나 티셔츠는 앞면이 밖으로 나오게 가슴을 활짝 펴는 것처럼 접고, 양말은 두 세번 접은 다음에 열린 끝으로 전체를 말아준다. 그런데 남편의 접기 방식은 다르다. 바지나 티셔츠도 나와는 반대로 접고, 양말은 끄트머리만 말아 문어모양 비엔나처럼 만든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남편한테 이렇게 접어라 저렇게 접어라 할 필요는 없다. 내 옷이 정 마음에 안 들게 접혀 있다면 내 것만 다시 조용히 정리하면 된다. 가끔은 은근슬쩍 내 접기 방법을 전수하느라 "가슴을 활짝 펴는 것처럼 옷도 당당하게 이렇게" 라고 말하면서 접을 때도 있긴 한데 남편은 아직까지 자신의 방법을 고수하는 중이다. 그래도 당연히 문제 될 게 없다.
남편이라고 해서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들진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자주 한국에서 공수해온 돌김을 가스렌지에 직화로 구워 먹는데, 내가 제일 귀찮아하는 것 중 하나가 가스렌지 청소이다. 이것저것 양념이나 찌개가 흘러넘쳐 탄 자국이 있는데도 그 위로 태연하게 김을 굽는 내 모습을 남편은 의아해 한다. 그는 가스렌지 청소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가 김을 깨끗하게 구워먹을 수 있도록 미리 가스렌지 청소를 해둔다.
우리 부부는 '거슬림'의 역치가 그다지 낮지 않은데다가 거슬리는 게 있어도 그걸 말로 하기보다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뒤에서 받쳐줄게'가 기본 자세인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한지 7년이 되는데도 치약 가지고 싸워본 적도 집안일로 싸워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고 자란 나라나 먹고 자란 음식 등 기본적인 게 많이 달라서 저녁으로 서로 다른 음식을 먹는 것도 괜찮고, 그냥 이것 저것 다 괜찮게 되어버린 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