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처음 데이트랍시고 슈퍼에 가서 장을 본 날, 아마도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될 운명이 되었나 보다. 무슨 요리를 한다고 장을 보러 간 건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게 있다. 닭가슴살을 보던 남편이 할인된 것만 쏙쏙 골라서 살펴보더니 20프로 할인된 것을 바구니에 넣었던 것이다. 내 허영심이 만만치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난지 얼마 안 돼서 처음으로 같이 슈퍼를 가는데 할인 품목으로 직진하는 그를 보고 꽤 놀랐다. 쥐뿔도 없는 내가 부끄러워서 절대 보여주기 싫은 생활력 강한 모습을 그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대로 보여 주었다. 첫 데이트에서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신발장에 신발을 넣다가 그의 신발을 봤다. 한 눈에 봐도 뒤축이 다 닳을 정도로 오래 신은 신발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신발이 더럽진 않았지만 이 한 켤레만 대체 몇 해를 신었나 싶을 정도로 닳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면을 보면서 그를 부러워하게 됐다.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집이 유복하진 않았다. 그래서 앞이 닳고 구멍이 난 실내화를 엄마 앞에선 괜찮다고 하고선 신고 다니면서는 속으로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당당하지 못했고 그대로 커서 허영심이 있는 어른이 되었다. 첫 데이트라면 응당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고 닳지 않은 신발을 신어야 "부끄럽지 않았던" 나와 달리, 남편은 그런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마 그 때 나는 그와 결혼할 운명이 된 것 같다. 사실 내가 허영심으로 가리려고 했던 건 돈에 대한 집착으로, 나도 누구보다 세일이 많이 된 걸 고르고 싶고 가성비가 좋은 걸 사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첫 데이트라- 차마 드러내놓고 하지 못하는 걸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그를 보고 가식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과 동시에 그가 나와 비슷한 가치 판단을 한다는 걸 은연 중에 느꼈기 때문이다. 눈치 안보고 할인하는 제품으로 직진하는 삶을 남편과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아직도 똑같다. 할인하는 건 누구보다 좋아하고 덤탱이 쓰는 것을 항상 경계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데이트가 끝난 지는 7년도 더 되었으므로 마음껏 가성비를 따질 수 있다. 비슷해서 참으로 편안하다. 곧 있을 결혼기념일에 대해 생각하던 중에 우리가 직접 쓰고 읽은 축사의 할인된 닭고기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와 내가 아직도 비슷하게 잘 살고 있다는 걸 그 날 그 순간 운명 지어졌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