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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난 Dec 28. 2023

안전업무를 담당하게 되다.

어쩌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이직한 회사에서 대망의 부서배치 면담을 하게 되었다. 인사팀 직원은 내게 '안전업무는 어떠세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 말을 듣고 내가 안전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직장인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회사에서 "~하는 게 어떠냐"라는 말은 당사자의 의견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주로 이미 내려진 결정을 예의상 확인하기 위한 용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는 '산업안전기사'자격증이라는, 안전업무를 맡기기에 너무나도 좋은 명분이 있었다. 나는 솔직하지 못하게 '괜찮습니다.'라고 답변했다.(그 자리에서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안전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여러 이유 때문에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업무였지만 어쩌면 운명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딱히 내세울 게 없는 나였지만, 동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을 법한 경험 하나가 있었다. 바로 현장 경험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젊을 때는 고생해봐야 한다는 쓸데없는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첫 아르바이트를 건설현장에서 시작했고, 그곳에서 형틀목수의 조공으로 거푸집을 날랐다. 그다음에 조선소로 갔다. 그곳에서 취부사와 용접사의 조공을 했다. 대학생활 4년 중 3년은 자작자동차를 만든다고 그라인더와 용접기를 끼고 살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제철소 현장직으로 일하며 파이프렌치를 들고 온 현장을 누볐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사용하는 웬만한 화기나 공구들은 대부분 사용할 수 있었고, 현장이 돌아가는 방식이나 작업자들의 심리에 대해 상대적으로 잘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물론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안전업무를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장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작업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도움은 될 수 있겠지만, 이런 이해와 공감이 오히려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방해가 될 수 있다. 작업자의 입장과 안전관리를 하는 사람의 입장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작업자에게 작업의 편의성과 효율이 중요하지만, 안전관리자에게 때로는 실용성보다는 회사가 법적인 Risk를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나도 실제 현장과는 거리가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안전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고 싶다.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 "진심으로 현장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 초심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기 위해 글을 쓰며 산업안전 업무에 관한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내가  업무를 하면서 공부했던 직무지식과 경험들을 저장하는 창고이자, 가끔씩 스스로를 뒤돌아 볼 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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