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님과 삼촌 - 삼촌이야기
삼촌의 관우를 연상시키는 얼굴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의 얼굴은 기다랗고 항상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불그스름한 그의 얼굴은 용접을 하고 나면 그 열기로 인해 더욱 붉어졌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젊은 나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피어싱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을 그 옛날에 귀를 뚫었을 정도니, 상당히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처음에는 삼촌도 내 사수와 마찬가지로 행님이라 불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다 행님이라 부르면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의 사수가 삼촌에게 행님이라 부르는 나를 보고 혼을 냈다. “마, 니 행님 나이가 몇인 줄 아나? 나한테나 행님이지 니는 삼촌이라 불러라” 나이를 물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나이를 알 수는 없었지만 , 나는 삼촌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삼촌은 기량 좋은 용접사였다. 용접하기 까다로운 곳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비드를 냈다. 특히 백비드 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용접건으로 모재를 조준하고 용접면의 차광유리를 내리면 불꽃이 일며 용접이 시작되었다. 그는 미세하게 손을 움직이며 ‘치이익’하는 스패터 튀는 소리와 함께 쇳물을 끌어나갔다. 그렇게 한 차례 용접이 끝난 후 깡깡이로 툭툭 치면 영롱한 비드가 슬래그를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모재 사이에 생긴 일정한 패턴을 가진 은빛 비드는 마치 내게 예술작품 느껴졌다.
나는 삼촌에게 용접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삼촌은 알려주지 않았다. 얼마 안돼서 사라질 사람에게 용접을 가르쳐주는 헛수고를 하며 쉬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혼자서 시간이 날 때마다 고철을 주워서 용접 연습을 했다. 삼촌은 며칠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그제야 내게 몇 마디 조언을 해주었다. “땜쟁이와 용접사의 차이가 뭔지 아나? 단순히 쇠끼리 붙이기만 하면 땜쟁이 밖에 안된다. 용접사라면 쇳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 삼촌의 가르침은 단순했다. ‘쇳물을 보라’였다. 단순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가르침이었다.
삼촌은 내가 살면서 봤던 가장 지독한 구두쇠였다. 그는 나에게 음료수 한 캔 사주는 법이 없었다. 두꺼운 보호복을 입고 용접을 하면 한 겨울이라도 땀이 한 바가지씩 흘렀다. 자연스레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내게 음료수한 잔 하자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이따금씩 내가 음료수 한 잔 하자고 하면 구실을 만들어 내가 음료수를 사도록 했다. 그가 연장자로서의 체면마저 포기하며 지독한 구두쇠가 된 이유는 늦둥이 딸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최소한의 돈만 쓰고 대부분의 돈을 부인에게 부치는 것처럼 보였다. 육아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던 그가 어떤 계기로 자리를 잡고 아이를 낳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밉지는 않았다. 내가 그에게서 본 것은 쪼잔함이 아니라 위대함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욕망조차도 철저히 통제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한 가장의 위대함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