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님과 삼촌 - 행님이야기
조선소에서의 호칭은 행님과 삼촌으로 통일되었다. 나이차가 적으면 행님, 나이차가 많이나면 삼촌이었다. 나는 행님 한 명, 삼촌 한 명과 같이 일했다.
내가 주로 따라다녔던 사람은 행님이었다. 행님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무뚝뚝했고 말을 길게 하는 법이 없었다.
행님과 함께하는 하루는 “단도리하자”로 시작해서 “욕 봤다”로 마무리됐다. 단도리는 ‘준비’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이다. 조선소에서의 단도리는 작업에 필요한 각종 유틸리티 호스를 끌어오는 일을 의미했다. 선체에서 작업을 하려면 그라인더를 사용하기 위한 압축공기, 산소절단기를 사용하기 위한 산소와 아세틸렌, 용접을 하기 위한 CO2와 알곤 호스를 데크로부터 작업 장소까지 끌어와야했다. 하지만 거대하고 복잡한 배의 이곳 저곳을 통과해 호스를 작업장소까지 끌어오는 일은 하루 이틀 일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않아 혼자서 단도리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그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차마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길을 머리에 담으려고 노력하면서 홀로 호스를 들고 데크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는 건 쉬웠다. 비상상황을 대비해 밖으로 나가는 경로를 안내하는 표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업장소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수많은 갈림길과 비슷하게 생긴 공간 속에서 나는 결국 길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행님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선체 내부에서는 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작정 행님을 찾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결국 한참을 헤매고 다니고서야 행님을 만나게 되었다. 행님은 한참 뒤에 호스도 없이 혼자온 나를 보며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뭐했노 지금까지"
그는 월급날이 되면 며칠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월급으로 향락가를 돌며 돈을 탕진했다. 하루는 손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칼을 맨손으로 잡았다고 했다. 술집여자와 사귀었는데 헤어지자 하니 식칼로 자기를 찌르려고 했단다. 그는 살기 위해 맨손으로 칼날을 잡고 버텼다고 했다. 되돌아보면 꾸며낸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기간 동안 행님이 손에 붕대를 감은 걸 2번 보았다. 첫 번째는 술집 여자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작업을 하던 중 발생했던 사고 때문이었다. 사건은 그라인더 작업을 하다가 벌어졌다. 복잡한 선체의 특성상 비좁은 곳을 파고 들어가 작업을 해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보니 때때로 그라인더 날이 주위 물체나 보호장치에 걸려 절단하려는 물체에 닿지 않았다. 이런 경우 그라인더 사용시 항상 보호장치를 장착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잠깐 무시해야 했다.
행님은 거친 사람이긴했지만 보호구를 소홀히 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무엇때문인지 몰라도 취부용 장갑을 착용하지 않고 목장갑만 착용한 상태로 작업을 했다. 그렇게 작업을 하던 중 그라인더 날에 손이 베었다. 피가 많이 났다. 나는 조선소에 있는 소방대에 전화를 하려고했다. 조선소는 워낙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보니 내부에 소방대와 수술실까지 딸린 병원이 있다. 하지만 행님은 나를 막았다. 사고가 발생했다는걸 원청에서 알게되면 우리가 소속되어 있늠 하청업체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행님은 휴지로 손을 감싼채 다른 동료가 몰고온 포터를 타고 조선소 밖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깨달음은 아이러니를 인식할 때 발생하곤 한다. 내게는 이 사건이 그러했다. 사고가 많이 일어나서 조선소 내부에 병원을 만들었지만, 정작 일을하다 다친 하청노동자들은 외부의 병원으로 향할 수 밖에 없는 이 아이러니는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상의 이면이었다. 나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좀 더 뚜렷하게 인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