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어느 시에서 한국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렸다 한다. 이른 새벽부터 사람도 차도 부지런히 깨어나는 한국, 전국이 도시화되고 변화와 트렌드에 민감한 지금의 한국을 생각하면 참 많이도 변하고 발전했구나 싶다. 오늘 아침 창 밖으로 보이는 캐나다의 풍경을 바라보며 2023년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오히려 여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곳 캐나다는 참 고요한 나라이다. 사람과 차가 만들어 내는 소음이 적어 고요하기도 하지만 세상의 여러 가지 소음(또는 소식)으로 부터도 왠지 조금은 동떨어진 느낌이라 해야 할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평화롭기 그지없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라.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자연재해나 재난, 전쟁으로부터도 비교적 안전하며,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잠잠한 나라, 그곳이 바로 캐나다이다.
최근 수상한 녀석의 등장으로 세상 사람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 녀석을 먼저 만난 사람들이 놀라고 경악한 다음 옆 사람에게 전하고 함께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발 빠른 사람들이 온갖 미디어에서 이 녀석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Chat GPT라 불리는 녀석이었다. 누군가는 이 녀석 때문에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결국 인간 세상은 망할 거라고 하고, 누군가는 이 녀석 때문에 이제 인간은 편히 즐기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도 한다. 또 누군가는 일단 이 녀석을 이용해 지금 발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연이어 이 녀석과 닮은 녀석들도, 이 녀석의 더욱 진화된 버전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눈이 휙휙 돌아가도록 빠르게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
변화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거대한 변화, 또는 '혁명'이라 해야 하나.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고 상상해 봤을 '인공지능'의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시작되었고, 전문가들 조차 당황한 기색으로, 머지않아 아주 많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산업혁명과, 디지털 혁명이 그랬듯이 한 시대가 다른 시대로 들어서는 시점에 당신과 내가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니 중심을 잘 잡고 서있지 않으면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녀석과 친하게 지내며 잘만 도움을 받으면 그동안 골치를 썩이던 문제가 사라지겠다 싶기도 하고 나보다 똑똑해 보이는 이 녀석에게 밀리면 어쩌나 두려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요즘 이 녀석 덕분에 언어(영어)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매일 영어로 공문과 이메일을 쓸 때마다 확신 없이 몇 번이고 고쳐 쓰던 시간이 훨씬 줄었을 뿐만 아니라, 영어 공부 자체에도 많은 도움이 되어서 늘 해오던 공부 패턴 자체가 바뀌었다. 그러다 어느 날엔, 지인 몇 분과 함께 구상 중인 교육용 이야기 책의 내용에 대해 이 녀석에게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컨디션을 주어 질문했더니 몇 초만에 뚝딱 이야기 초안을 만들어 준다. 사실 이 녀석이 제안한 이야기 자체는 아직 별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등골이 싸했다. 이유가 뭐였든지 간에 이 녀석에게 내가 가장 잘하는 일조차 물어보고 있는 나의 모습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캐나다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든 말든 여전히 고요하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나는 신속하고 민감하게 변화에 반응하도록 이미 세팅된 것인지, 변화를 마주해도 끄떡없는 캐나다의 이러한 우직함이 가끔은 참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Chat GPT를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알고 있다 한다. amazing 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잘 사용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공지능'에 대한 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화두를 던져 보아도 딱히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내 주변의 사람들만 그런가 싶어 만나는 사람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지 물어보아도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면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나라이다. 이 녀석의 등장에 대한 (미디어로 전해 듣는) 한국인들의 반응에서는 어느 정도의 불안을 동반한 설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미 발 빠르게 변화를 배우며 이 녀석을 응용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보다는 '발 빠른 아침의 나라'가 더 어울릴 듯한 모습인 것이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상관없이 한국, 캐나다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대응과 움직임이기업이나 국가 차원으로 진행 중 일 것이라 생각한다. 혁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세계적 변화의 흐름 앞에서 누구인들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랫동안 변화와 진화를 거듭해 온 인간 세상이 이 녀석으로 인해 다시 한번 커다란 변화를 맞이할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 주는 모든 불확실성이 그렇듯 이 새로운 녀석에 대한 흥분과 기대는 두려움을 동반한다. 인간은 이 녀석을 만들어 냈으나 스스로 성장하는 녀석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알 수가 없고, 그 우수함이 인간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지 조차 가늠이 어렵다. '존재한 적이 없는 존재'에 대해 누가 감히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을까.
신기할 만큼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사는 이곳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이방인이 된듯한 기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의 고요함이 나를 달뜨지 않게 도와준다. 어차피 예측이 불가능한 미래라면 중심이라도 잘 잡고 있어야 하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람은 쉽게 가는 길을 알고 있을 때 어렵게 가는 길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존재이지 않은가. 설령 그 선택으로 인해 스스로 가는 방법을 영원히 잊게 될지 모른다 해도 말이다. 유혹에 약한 인간인 나는 생각하는 방법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게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존재한 적 없던 존재에 대한 경험을 인류는 얼마 전에도 해보았다. 처음 코비드가 찾아왔을 때도 불안에 떨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아서 다시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세상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되, 오히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변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사랑, 신뢰와 믿음, 배려와 같은 변하지 않는 가치, 그것은 인공 지능에게 가르칠 수도 스스로 배울 수도 없는 것이니 인간과 녀석이 구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거시적으로 숲을 보는 것은 많은 경우에 발전과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사실 행복은 매우 미시적인 것이 아닐까. 변화하는 세상은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고, 그래서 우리는 불안해진다. 그럴 때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낀다. 곧 시들 것 같아서 한 가지 잘라다가 작은 꽃병에 꽂아놓은 이름도 모를 꽃의 겹꽃잎이 아름답다. 코를 가져다 대어보니 향기도 있었구나. 상쾌하다. 내가 세상을 쫓아 허둥대느라 너를 보지 못하고 언젠가는 다할 내 삶의 이 순간을 놓친다면 인간의 진화조차 무슨 의미일까.지금 이 순간의 소소한 행복과 일상에 집중하는 것, 어쩌면이것이캐나다 사람들이 변화 앞에서고요할 수 있는이유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