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거긴 말고

_마지막 레이스가 달콤한 법

by 하이움

도저히 안 되겠어!


큰맘 먹고 찾아가기로 한다.

멈칫, 통장의 잔고가 걸린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곳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캔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했을 것이다.


문제는 들인 만큼 효과가 있냐는 것이지.

누구는 도박이라고도 했다.

부드러운 표현으로는 복불복.

자기만족을 변명 삼기엔 착한 금액이 아니었지만

기가 막히게 뽑아낸 홍보문구에 넘어가 버린다.


눈밑 꺼짐은 필러라는 무시무시한 시술을 요했다.

용기가 없다.

늘어지는 얼굴을 위해서는 리프팅 시술들이 필요했다.

비싸다.

망설이는 나에게 토닝이라도 해보라고 권한다.

피부톤이 밝아지고 잔주름이 없어지면

눈밑 꺼짐도 신경 쓰이지 않을 거라고.

평소도 거절을 잘 못하는 내가

프로인 피부과 상담 실장님을 이길 재간이 없다.


최소 한 달에 2, 3번은 오가야 하는 것이 싫어서

지금껏 피부과를 멀리했는데..

큰맘 먹고 해 보기로 한다. 결과는 처참했다.


토닝이 아무런 효과를 보이지 않자

어디서든 들어봄직한 멘트,


'이건 어디 가서 말하시면 안 돼요,

특별히 해드리는 거예요. 엄청 비싼 기계예요'


그래 믿어보자. 며칠이후 눈을 의심한다.

비싼 기계는 나아지기는커녕

기미를 더 짙게 만들면서 내 얼굴은 전보다 더 칙칙해졌다.


나는 흥분하기 시작한다.


이러려고 그 시간과 돈을 쓴 게 아니라고!!


기분 탓이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으련만

병원에서도 당혹한 눈치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둘러댄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제야 그들은 털어놓는다.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을 것처럼 홀릴 땐 언제고

사람들마다 제각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로 간단히 책임을 피해 간다.


20년 전 결혼을 앞두고 찾았던 피부과에서 들었던 말과 틀리지 않다. 그 세월이 얼마인데..

일론 머스크가 매일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고

알렉사가 아재개그를 해대는 지금

그때나 지금이나 레이저는 별 효과가 없다니..

납득하기 힘들다.


병원은 효과가 생길 때까지 이 기계 저 기계

시간과 돈이 무한한 것처럼 권한다.

나는 그저 운이 나쁜 사람으로 간주되며

시술도, 시간도, 비용도 아무것도 되돌리지 못한다.


싫증 난다.

유난히 더뎌 보이는 미용 의술이

겨우 그런 것에 기대 보려던 나의 마음이.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고 했던가.

항의할 힘도 없다.

그런 곳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돌아오는 길이 씁쓸하다. 화도 난다.


외모에 예민할 10대, 20대에도

외모에는 관심도 없었으면서

피부과는커녕 한번 가면 한두 시간씩 가만히 있어야 하는

피부관리숍이나 미용실마저도 좋아하지 않았으면서.


그래, 그만두자.


세상의 모든 것이 간단히 이루어지는 일이 없을 텐데

내 생각이 너무 물렀다.

이래저래 기운 빠질 일이 많다 보니 판단이 흐려졌을까.

허겁지겁 병원을 찾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노화와 만난 것이 충격적이었을까..

나를 이해해 주기로 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일단 진정하자.

피부과 6개월 다닌 걸로 도자기가 된다면

세상 사람 다 뽀얀 피부에

주름 있는 사람이 없었겠지. 냉정해지라고.


차라리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자.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나다운 방법으로.


소중한 돈과 시간은 좋아하는 것에 쓰도록 하자.

그리고 얼굴은...

그래 친해지기로 하자.

적어도 익숙해지기로 하자.


나이 든다는 것은

'여러모로 여유로워지는 것이라 나는 좋아'라고 생각한 것처럼

눈에 보이는 노화의 증거들 앞에서도 느긋해져 보기로 한다.

주름이 없고 팽팽한 얼굴보다는(가능하지도 않지만)

표정이 좋은 사람을 목표로 하자.


첫째, 조금 신경을 써서 씻고, 충분히 발라주기

늘 듣는 얘기대로 얼굴을 꼼꼼히 씻고,

로션을 충분히 발라주는데 롤링해 추가해 주는 것이다.

주름아 더는 안돼하는 마음으로.


둘째, 거울 보면서 웃는 연습하기

많이 웃으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노화가 시작되어서 그런지

그리 인상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놀랬다.

양치할 때나 로션을 바를 때마다 웃는 연습을 할 것.


셋째, 예전처럼 신경 써서 입고 다니기

운동 핑계는 그만,

모자와 운동화를 일상복으로 삼는 건 너무 늙어 보인다.

가끔은 드라이도 하고 에코백은 잠시 내려놓고

출근할 때처럼 슬랙스도 입고 낮은 구두도 신고 화장도 조금은 하기.


그렇게 단정하게 가꾸다 보면

좀 움직여볼까 누굴 만나볼까 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니

기분 전환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그래 귀찮은 짓이다.

드라이도 싫고 뭘 입어도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 짜증 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벌써부터 징징 거리기에는

수명이 너무 길어졌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씨를 심어야 꽃을 보고 열매를 얻고

로또를 사야 1등을 꿈꿔 볼 수 있는 게 아니던가.

이러나저러나 나의 인생에서 오늘이 제일 젊은것이다.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오래 가져가도록

이제라도 챙기는 것도 현명하지 않을까..


주름과 움푹 파인 곳을 보는 대신

시선을 돌려 나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예전보다 깊다.

살짝 웃어본다. 다행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웃는 얼굴이 좋다. 적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 그거면 됐어.


더 젊어 보이려고

혹은 젊은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려고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기보다는

지금 나라서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반짝거리게 하는 것이

즐겁게 사는 유일한 방법인걸 깜빡 잊어버릴 뻔했다.


어차피 거울만 아니면

내가 나를 볼 일은 그리 없다.

타인이 화들짝 놀라기도 하겠고

안쓰러워 하기도 그건 그들의 마음이니까

내 관할이 아니다.


올해를 겨우 이틀 앞둔 지금

지나온 시간들을 더듬어 보며 혼잣말을 중얼댄다.


잘 지나왔다.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