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해롭지

_마지막 레이스가 달콤한 법

by 하이움

.믿을 수 없는 파도를 뒤집어쓰고

물속에 빠졌을 때

겨우 고개를 내밀고 든 생각은

'라면은 해롭다'는 거였다.


그때 그걸 했더라면

당시 이렇게 말했더라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기회를 잡았더라면

그때 거길 갔더라면, 가지 않았더라면

그 순간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후회와 아쉬움의 '라면' 대잔치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잦은 야식으로 먹는 라면이 몸에 좋지 않듯

밤마다 이어지는 탄식의 ~라면은

영원을 갉아먹고 밤을 갉아먹는다.


그런 나의 아침은 너덜거렸지만

해가 비치는 하루가 시작되면 그래도 모든 것이 한결 나았다.


마음이 괴로운 날은 잘 자도록 애써야 한다.

자고 일어나고

자고 일어나고

그렇게 나는 시간을 바치고 지혜와 회복을 얻는다.


털어버려야 한다.

후회한다고 해서 돌이켜지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제대로 된 결정만 할 자신은 여전히 없다.

내가 정할 수 없는 일들도 무수히 일어난다.

인정할 수 없는 일들이...

원망스럽고 안타깝지만 그게 인생이다.


나무가 왜 나무고 꽃은 왜 꽃이라 부르는지 묻는 않는 것과 같다.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걸 지나온 길의 끝에는

허무와 허탈만 남아 있을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평온함과 자유로움이 만져진다.

젊은 시절에는 없는 인내심과

한결 너그러워진 나를 만나게 된다.


그러니 두려워 필요가 없다.

다가오는 새해에 마흔이 되고

쉰이 되는 후배들의 탄식이

12월에 들어가면서 더욱 짙어지고 있다.

아무리 내가 말해줘도

당장은 이해되지 않을 테니

그저 속으로만 이야기한다.


'괜찮아~ 여기 세계도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을걸? 등가교환 알지? 가져가지만 않아

나보다 타인을 챙길 줄 알게 되는 건 멋진 일이지'


삶을 허겁지겁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이 듦의 의미가 있다.

아마도 그것이 연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이 진부한 현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 마지막 레이스가 달콤한 법이지.

어쩐지 그 말이 아주 잘 이해가 되는 밤이다.


후회하지 마

대신 신중하기로

자책하지 마

대신 용서하기로..


과거에 얽매여 있다가는 앞으로 나가지 못해

그래.. 앞만 봐, 앞만 보는 거야!


굳게 마음을 먹은 날,

마음이 든든해지는 밥을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마트에 갔다.

급히 들린 마트 화장실에서 놀랍게도

나는 삶의 농담과 마주친다.

내가 앉은 화장실 맞은편에 적힌 문구,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한다'


역시 인생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참 재밌는 세상.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기가 막힌 명언이라든가 오늘의 유머 같은 메모들.

어쩐 일인지 우리는 고속도로 휴게소라든가

식당, 관공서 같은 화장실에 가면

어디서 이런 말들을 찾았을까 싶은 명언들이 붙어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마주하곤 하지요.


볼일을 보는 동안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감동하기도 하고 웃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카페들은 세련된 인테리어를 추구하다 보니

보기가 힘들어졌지만 예전에는 카페 화장실마다

서로 경쟁하듯이 이런저런 문구들이

손그림과 어울려 붙어 있곤 했지요.


화장실이지만 혹시나 오래 머물게 될 것을 염려해

좋은 말들을 붙여 놓자고 애초에 제안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떤 문구가 읽는 이에게 가닿을지 고민하면서

손글씨든 터넷에서 어울리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골라가며

프린터 하고 붙였을 누군가의 마음을 가늠해 보니

어쩐지 정겨운 기분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