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도저히 물러갈 것 같지 않은 지독한 무더위가 겨우 물러가나 싶은 산뜻한 초저녁.
바람 한 점 없던 한여름과 달리 바람이 살랑거리고
그날따라 아파트 정원의 나무들은 싱그럽게 초록거리고 있었다.
일찍 퇴근한 남편과 이른 저녁을 먹고 아파트를 한 바퀴 돌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고 발신자는 엄마였다.
“희야~ 아빠가... 아빠가...”
4년 전 코로나가 세상을 잠식해 가고 있을 때
나의 아버지도 큰 병을 앓으셨다. 허리가 아파 찾아간 정형외과에서
지금 허리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황급히 옮긴 대학병원에서
수술이 이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은 지긋지긋한 정밀검사를 겨우 마치고 들은 병명은
대동맥류.
어디에선가 한번쯤 들어 본적은 있었겠지만 흘려 들었을 게 뻔하고
가까운 사람 중에 그런 수술을 받은 사람을 알지 못하기에 너무나 생소했던 병명이었다.
대부분의 병이 그렇듯 왜 그런 병에 걸렸는지 명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 채
아버지는 ‘왜 하필 내가’ 그랬을 것이고
아버지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왜 하필 우리 아버지’가 라는
억울함을 달랠 틈도 없이 갑자기 쓰러질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수술 일정이 빠르게 잡혀 버렸다.
허리가 아픈 것도 대동맥류 때문이라고 했다.
(수술을 하고 난 뒤 좋아지는가 싶던 허리가 작년부터 심해지면서 다시 정형외과를 찾았고
공교롭게도 같은 진단을 받고 다시 대학병원을 가게 되신 것이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수술만 된다면야 감사한 일이었지만
여든을 앞둔 아버지의 나이가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의료진들은 자신감을 보였고 아버지도 용기를 내보겠다고 하셨다.
기가 막힌다. 사실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 한 건 엄마였고
내 기억에 아버지는 아프시지도 않았고
어쩌다 감기 같은 것이 걸려도 ‘콘택 600 하나 먹고 자면 딱 낫는다’하시면서
병원 가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아버지가 수술을 하신다니..
그것도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는 대수술을..
그날부터 아버지가 어떤 심정으로 살고 계신지 감히 나는 알지 못한다.
하필이면 코로나 시국이라 병원 상주도 면회도 전면 금지되던 나날들
-어느새 그때를 시절이라 부르는 시간이 되었다-이라
늙으신 아버지를 늙으신 엄마가 혼자서 도맡게 되었고
젊은 사람이라도 질겁하게 만드는 수술 동의서도 늙으신 엄마 혼자 감당해야했다.
잔인한 시간이었다..
수술 당일 병원 문 앞에서 엄마에게 겨우 우황청심환을 쥐어드리고
밖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던 날.
8시간쯤 지났을까..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8시간이 겨우 지나고 드디어 울리는 엄마 전화.
“희야.. 아빠 눈 떴다. 엄마를 알아보더라.. 됐다...”
눈물과 함께 전한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는 주저앉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병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건지 아버지 나이 때문인지
후유증에 대한 설명들이 길어지면서 너무나 무서웠고 슬펐고
대체 그런 말을 듣고도 당신들에게 수술을 맡기란 말이냐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겨우 휘발되는 기분이었다.
그냥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그 긴 시간을 버텨주신 아버지에게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를 위해.. 힘을 내주셨군요..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감사해요..'
그 연세에 개복수술이라는 게 만만치 않아서 회복은 더디 걸렸지만
아버지는 감사하게도 합병증 없이 일상생활을 되찾았다.
그런데 4년이 채 되지도 않아 아무래도 허리가 나아지지 않아서
다시 찾은 정형외과에서 다시 대학병원으로 안내받아 대동맥류와 다시 재회하게 되셨다.
이번에는 수술하기 힘든 곳에 대동맥류가 다시 발견된 것이다.
아 삶이란.. 인생이란.. 대체 무엇일까
결국은 이런 괴로움 슬픔을 맛보려고 사는 것일까
아무리 삶이 고행이라지만 나는 혼란에 빠진다.
얼마나 억울하실까
얼마나 슬프고 외로우실까
힘들고 쉽지 않은 나날을 태연한 척 보내고 계신 아버지를 매일 떠올린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해 낸 편지 쓰기.
어릴 때부터 내가 편지를 써드리면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셨다.
지금까지 곱게 보관 하고 계시는 우리 아버지.
여기에 실리는 글은 무기력하고 쓸쓸하기만 한 날들에
내 편지가 잠깐이나마 기쁜 순간이 되길 소원하며
일부러 우체국에 가서 부친 편지들이 포함되어 있다.
나의 편지를 받은 아버지는 답장을 보내실 때도 있고 문자로 대신할 때도 있다.
앞으로도 아버지와 나의 서신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소망하며
우리들의 편지들이 소복하게 쌓여가길 희망하고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