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마지막 레이스가 더 달콤한 법
친하게 지내는 P가
우울하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2월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에
그저 계절성 우울이려니
'달콤한 빵이랑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걸
그런 식을 돌려서 말하는구나
귀여운 걸' 하는 마음에
당장 만날 약속을 잡았습니다.
약속을 하고 만날 날
P는 전에 없이 풀이 죽은 얼굴이었고
실제로 우울이라는 아우라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듯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일 년 전 나와 겹쳐 보이면서
그녀의 고난과 시련이
고스란히 보이는 듯했습니다.
언제든 혹은 누구든
겪게 되어 있는 일이라고는 해도
나보다 몇 년 어린 P는
좀 더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해진 순서라는 게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일 년 전 내가 이미 겪어 본 일이라
조심스럽긴 해도
위로는 건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 보면
마침내 정상에 오르게 된다고
그러면 생각지도 않은 풍경이
아니, 그런 놀라운 이 풍경을 보려고
바득바득 올라왔지 싶은 순간이 있다고.
가빴던 숨이 잦아들고
모든 것이 조용해진 순간
살랑살랑 바람이 느껴지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드디어 들리고
길가 풀과 작은 꽃들이 비로소
보이는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고.
너무 겁내지 않아도 된다고
두 손 꼭 쥐고
말해주고 싶었지요.
하지만 긴 이야기를 하는 대신
시집 한 권을 쥐어주고 돌아왔습니다.
P가 그 행간을 읽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요.
P와 헤어져 휘휘 돌아오는 길,
지난 일 년여 시간이 스쳤습니다.
산에서 길을 잃고 밤을 맞이한 것 같은
두려웠던 날들..
과연 아침은 오나 싶었던 날들..
퍼질러 앉아 쉴 수 있는 정상이
있기나 하나 의구심 가득하던 날들..
하지만 상쾌한 바람이 부는
정상은 있었고
땀을 닦고 눈물을 닦고
문득 내려다본 풍경이
너무나 놀라워서 뭉클했던 기억..
어쩌면 삶의 시련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안에 무엇이 남을지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감정들이 있는지도 몰랐던
깊은 두려움과 편견이 사그라들고
마침내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제서야
조금 성장한 기분,
그래, 이 나이가 되고서야
나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난생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이 진지한 자기 성찰을
나는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한층 성장한
앞으로의 삶이 더 기대된답니다.
분명한 건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이고
그렇다면 나는
꽃한송이를 간직한 마음으로
나의 매일을
나의 매순간을
그리고 세상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나와 잘 지내볼까 합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상실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레이스가 더 달콤한 법>이지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정상에서 시원한 물을
나눠 마시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P도, 나도,
힘든 시간을 오르고 있는
모든 분들의 시간이
마지막에는 더욱더 달콤하기를 바라며
연재를 마치려 합니다.
새로운 글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