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입니다만..

_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by 하이움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는 실감은 매일 하는 것 같다. 마트에 갈 때마다 영수증 드릴까요 하는 말에 네 주세요 하고 받아보면 분명 고기도 없이 단지 채소와 과일 그리고 우유와 요구르트 정도만 담은 것 같은데 10만 원 가까이 나왔을 때는 그럴 리 없는데도 계산이 잘못된 거 아닐까 영수증을 훑으며 전에 없이 암산을 해보기도 한다. 고기도 없는 장보기 가격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카페에 가서도 마찬가지. 봄이라고 내놓은 신상음료들은 하나같이 너무 비싼 가격이라서 단순한 호기심으로 주문하기엔 용기가 필요하고 셋만 모여도 오늘은 내가 쏠게라는 말이 부담스러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슬프게도 이제 카페는-불과 3~4년 전만 해도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오며 가며 심심할 때마다 들러 지인을 불러 내거나 책을 읽다 오는 만만한 곳이 아닌 것이다.


그날도 커피 값을 뽑을 야무진 마음으로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아, 앉자마자 건너편 풍경이 나의 심사를 꼬이게 만든다. 왜 향긋한 커피 향이 가득해야 할 이 공간에서 굳이 신발을 벗고 저렇게 앉아 있는 광경을 나는 목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한 명은 양반다리, 맞은편 또 다른 한 명은 고스톱이라도 치는 자세로 무릎을 세우고 아이스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모양새라니.


커피 마실 기분이 삭 가신다. 비싼 딸기 쇼트케이크도 하나 주문했는데 후회가 밀려온다. 당장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주변 사람들이 힐끗거리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둘은 눈하나 깜짝 안 한다. 하긴, 그런 시선에 신경 쓸 정도라면 애당초 신발 같은 건 벗지 않았겠지. 문제는 그런 모습을 목격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즘 들어 유난히 자주 목격되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커피숍이든 고깃집이든 심지어 레스토랑에서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아니 강력하게 항의할 뻔했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큰맘 먹고 찾은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좀 잡으려고 하는데 신발을 벗고 앉아서 식사를 하는 커플을 맞닥뜨리다니.. 밥을 먹으면서 그들의 맨발을 내가 굳이 봐야 하는가. 속이 부글거린다. 대체 그들은 왜 그럴까.. 언제는 신발 벗기도 귀찮고 쭈그리고 앉는 자세는 입식으로 자라온 세대에게 맞지 않다는 이유로 거의 모든 식당이 입식으로 전환되지 않았던가. 그럴 때는 언제고 굳이 벗지 않았으면 하는 장소에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홱 벗어 버리는 걸까.


그런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내 돈으로 와서 내가 벗고 먹겠다는데,라는 이기적인 마음과 타협은 절대 없다는 식의 완고함을 마주하는 것 같아서 맥이 빠질 때가 많다. 사실 그 기세에 겁을 먹은 건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 카페는 외국과 달리 그 비싼 폰과 노트북, 가방을 두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멀쩡하다는 것이 외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점만큼은 어깨를 으스댈 정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신경이 쓰인다. 입을 열고 먹어야 하는 장소에서 턱 하니 신발을 벗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발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굳이 내보이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실제로 광화문 팬케이크 가게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그런 한국인 커플을 자꾸만 훔쳐보는 것을 보고 내가 다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외국에서나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들 중 식사 중 혹시 커피 중 신발을 벗고 있는 사람은 내 평생 본 적이 없다. 그건 확실하다! 솔직히 신발을 벗고 다리를 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해변가가 아닌 다음에야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말 그대로 공공장소니까 내 안방, 내 거실이 아니니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졌으면 좋겠는데, 사회구조상 경쟁구도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우리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은 그만 신경 쓰고 나에게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무엇이든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와전된 건 아닐는지..


저마다 카페를 찾는 이유도 다르고 의미도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쉼'을 기대하는 부분은 비슷하지 않을까. 내 방 내 거실처럼 벌러덩 누워 있는 그곳에서 누군가는 온기 가득한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딱 창문크기만큼의 풍경을 보면서 회복을 기다리기도 하는 것이다.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린 어떤 식으로든 만나게 되어 있을 테고 시간과 돈은 누구에게나 귀할 것이다. 부디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든 예의 바른 만남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