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산드라는 해마다 반복되는 다이어트 선언을 하는 것만큼만 비장함을 담고 선언한다.
산드라의 가족은 그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무슨 말이지? 산드라는 본인이 보고 충격받은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행성>을 가족에게 보여주며 한 달 동안만이라도 집안에서 단 하나의 플라스틱이 없는 실험을 해보고자 제안한다. 뚱딴지같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마당으로 플라스틱이라는 플라스틱은 모조리 내동댕이 쳐도 좋다는 말에 아이들은 신이 난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플라스틱이 집안 곳곳에 잠식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플라스틱은 계속해서 발견되고 설사 집안에 있는 플라스틱을 빠짐없이 잡아 냈다 장담한다 하더라도 장을 볼 때마다 플라스틱은 너무 간단하게 맞닥뜨리게 된다. 칫솔, 수세미, 우유, 케첩, 과일뿐 아니라 채소들은 죄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으니까.
아이들의 학용품과 장난감은 어떤가. 역시 플라스틱으로 넘쳐난다. 그런 것을 다 빼고 생활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드라는 아니 그 가족은 집요하게 수행해 낸다. 우리 가족만이라도 지구환경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 마음 하나로.
고기를 사러 갈 때도 스테인리스 그릇을 들고 가 가게 주인과 팽팽하게 대치하고, 플라스틱에 담겨 있지 않은 화장품 가게를 집요하게, 기어이 찾아내는 산드라의 모습은 놀람을 넘어 감탄에 이르렀다.
용기 있는 그녀의 모습에 힘입어 나도 슬그머니 따라한다. 먼저 집에 쓸데없이 굴러다니고 있는 플라스틱은 뭐가 있는지,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고 있는 건 얼마나 있는지 뒤지기 시작한다. 원래 플라스틱은 좋아하지도 않았고 취향이 나무나 천으로 만든 것을 좋아해서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첫 번째 냉장고 관문부터 통과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대부분 플라스틱병에 담긴 각종 소스와 간장병들을 모아놓은 유리병으로 옮겨 담고 수세미도 사놓은 것만 쓰고 뜨개 수세미로 교체했다.
무엇보다 다이소에서 손쉽게 구입해서 청소하던 걸 그만두었다. 소위 마법 스펀지로 불리는 편리한 도구들을 몰아내고 대신 식초와 구연산으로 대체했는데 그 과정에서 지구환경까진 모르겠고, 세제를 남발할 때 어쩔 수 없이 맡아야 했던 냄새나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기분이 좋았다.
무겁지만 유리에 담긴 소스나 화장품 위주로 구입하고 정리를 하겠다고 정리 바구니를 다시 구입하지 않는 등 소소하게나마 산드라를 따라 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고 만만치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특히 인근 농가와 직접 거래를 한다던가 견과류나 과일, 각종 차까지 저울에 달아 판매하는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도 아주 부러웠던 점이다. 나는 나만의 금속통이라든가 나무통이 얼마든지 있어서 들고 갈 수 있는데 그럴 수 있는 곳이 없어 늘 아쉬웠던 것이다. 몇 번 시도했지만 흔쾌히 좋다 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이 준비한 용기에 담아서 팔 수밖에 없다는 답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머니 댁에서 뭔가를 얻어가지고 올 때다. 미리 담아갈 통을 가지고 가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얻어 올 일이 있는 경우 어머니는 항상 마트 행사에서 받았음직한 예의 그 플라스틱 보관용기에 일회용 비닐까지 더해서 담아 주시려고 하는데 그것만은 꼭 막는다.
"어머니~ 잠깐만요!! 집에 플라스틱 용기는 두고 싶지 않아요!!!"
편리하기 그지없는 플라스틱이 환영받던 세상을 건너온 어머니는 별 희한한 말을 다 듣겠다는 표정으로 사은품으로 받은 플라스틱 용기가 얼마든지 있으니 심지어 통도 모두 가져가라고 하시지만 나는 단호하다. 무겁기도 하고 다시 돌려 드리기 귀찮지만 어머니의 유리보관 용기를 빌리거나 통을 가지고 다시 가져가는 걸로 아슬아슬하게 합의를 본다.
이런 간단한 과정을 거치는 데도 눈치를 보고 일일이 해명하고 설명을 해야 하고 심지어 가족들의 무신경으로 묵살되는 걸 번번이 겪다 보면 이 세상 모든 산드라 같은 전사들이 얼마나 대단하며 그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세상엔 그런 훌륭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느리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거라고 믿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선물한다. 적어도 산드라의 의도가 전해지길 바라며.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싶은 것까지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그녀의 '시도'는 울림이 크고,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래를 밟고 서 있는 발등으로 바닷물이 사르르 와닿듯이 적셔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린 혼자가 아니니까, 우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거니까.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