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봄동 비빔밥이 대유행이라고 한다. 유행이라니, 원래 이 맘 때면 먹는 거 아니었나?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물가 영향인지 유행을 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봄동의 확 올랐다.
봄동의 가격을 보고 망설이기는 아마도 올해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어릴 때는 그 맛을 몰랐던 봄동, 발음이 너무 귀여운 것과는 달리 그냥 평범한 겉절이로 보이는 봄동을
엄마는 왜 철마다 밥상에 올리는지 당시는 몰랐지만 봄동을 무쳐 주시던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과연 봄동은 봄동,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입춘 지나면 먹어야지, 암 먹어야 하고 말고.
웬만한 겉절이 양념이 다 거기서 거기듯 봄동 역시 고춧가루, 간장, 식초, 매실진액을 기본으로 집집마다 입맛 따라 양을 조절하는 정도였고 정작 중요한 건 다음이었다. 우리 집은 언제나 들기름이냐 참기름이냐로 의견이 팽팽했는데, 들기름을 넣어야 고소하다는 엄마와 들기름 특유의 비릿한 향이 싫었던 나와 동생은 참기름만을 고집했던 것이다. 철 모를 때였기 때문일까 인생을 몰라서 그랬을까 지금은 무조건 들기름파가 되었지만.
겨울이 완전히 물러난 건 아니었으나 달력상으로는 입춘과 경칩이 지났고 명명백백 3월이었다. 춥고 긴 겨울을 또 한 번 지나왔다는 사실에 주먹을 내지르며 환호하고 싶어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파카와 코트를 벗어던지고 아무리 봐도 성급하기 그지없는 봄 카디건으로 계절을 맞는 청춘 같이는 아니더라도 나에게도 봄의 제스처가 절실했다. 봄동을 먹는다는 건 내게 그런 의미였고 봄동이 나의 봄이고 카디건이었다.
기분을 내는 것 말고도 제철음식은 여러 가지로 이롭다. 맛과 영양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 그대로 제철음식이니까 온실재배라든가 냉동이 따로 필요 없어 자연스레 에너지 사용과 탄소 배출을 줄여준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제철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그래서 하늘이 파랗고 공기가 달달했던 것일까.
건강을 위해서도 환경을 위해서도 우리 땅에서 제 철에 나는 재료들에 충실하고자 하는 나의 작은 다짐들은
봄이 되면 더욱 순조로워진다. 싱싱한 냉이와 달래, 갓 나온 쑥, 바다향 가득한 멍게, 새콤달콤 딸기까지..
나날이 오르는 물가가 야속해서 그렇지 판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제철 재료 덕분에 장 보는 시간이 고되지 않고 즐겁다. 보기만 해도 향긋함이 느껴지는 미나리라든가 건강해 보이는 두릅과 빨갛고 탱탱한 딸기들을 보느라 나의 걸음을 느려지고 장보기가 아니라 무릇 산책이라도 나온 듯하다.
다만 올해도 플라스틱 빨간 대야에 담겨 있는 딸기가 여전히 불편하고 마음이 쓰였다. 각 가정에서 딸기를 한 번만 사 먹는다고 해도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대야들이 쌓일 것이며 그 행방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딸기의 특성상 관리가 힘든 점이 있겠지만 재활용도 되지 않는 플라스틱 대야에 담겨 있는 것을 보며 망설여지는 건 비단 나 뿐일까.
봄의 상징이랄 수 있는 상큼한 딸기를 산뜻한 기분으로 살 순 없는건지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다음 매대에 한가득 자리 잡고 있는 참외를 보고는 기어이 한숨이 나오고 만다. 노란 참외 빛깔이 곱기는 하지만 선뜻 반겨지지 않는 기분. 계절에 상관없이 뭐든 구해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정말 좋은 거라 할 수 있나.
시장이나 마트에서 참외를 발견할 때면 아,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구나! 감탄과 동시에 반가운 마음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추억과 기억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기분이다.
게다가 계절과 무관하게 폼 잡고 나오기까지 불필요한 과정과 무심한 과정들을 얼마나 거쳤을지 새삼 세상이 편해지는 것과 마음이 편해지는 건 별개라는 생각이 든다.
뭐, 그렇다고 내가 환경 운동에 평소 엄청 관심이 있다거나 채식주의자는 더더욱 아니고, 로컬 마트에서 제철 재료를 사는 게 고작이면서 일일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이 부끄러워 입 다물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소비하고 싶진 않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기분으로 조용히 봄나물들을 고른다.
감탄과 탄식이 이어지는 동안 나의 장바구니는 어느새 가득 찬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온통 싱그러운 것들로. 자칫 반가운 마음에 흥분해서 필요이상으로 사진 않았는지 그래서 금세 물러지는 채소들을 끝내는 버려야 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다시 살피고 계산을 치른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은 봄잔치가 될 것 같다. 달래를 듬뿍 넣은 간장 양념을 한 멍게 비빔밥에 알근달근하게 버무린 봄동 겉절이, 그리고 냉이로 끓인 된장국에 마지막으로 딸기를 후식으로 내놓아야겠다. 그래, 난 여기서 제철에 해야 할 일을 챙기자. 음~ 식탁에 봄이 한가득 차려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