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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ABA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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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AJUNG Feb 27. 2018

BABA PROEJECT – 지난(JINAN)

 듣던 대로 지난(JINAN)역은 굉장히 북적였다. 앞뒤로 맨 배낭이 보온 역할을 해주었지만 콧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둠이 도시를 지배했고 삭막하게 쓰인 붉은 글자들이 널려있다. 어두운 거리에선 검은 그림자들이 나를 정신없이 지나쳤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가 끊임없이 귀를 괴롭혔다. 거부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나는 비니를 다시 눌러쓰고 마스크를 코까지 올렸다. 지도에 숙소를 찍어두었지만 이것이 정확한 위치인지 아닌지는 가봐야 알 수 있다.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자리가 없어서 배낭을 바닥에 내려두고 그 앞에 섰다. 이내 버스는 내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 정도로 가득 찼으며 사람들은 버스에 파고들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자리를 지키며, 다리 사이에 넣어 둔 가방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버스는 무거운 소리를 내며 달렸다. 창 밖으로 고급 백화점과 명품 매장이 줄지어있다. 가히 홍콩의 명품거리를 연상케 했다. 한국에도 저렇게 큰 명품 매장이 있던가 생각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도시를 잘못 고른 것 같다. 이런 고급스러운 건물과 명품 매장이 즐비한 명소를 가고 싶었다면 애초에 베이징이나 상해를 갔었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나에게 전혀 매력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거부감마저 드는 장소인 것이다. 숙소는 2박 3일을 예약해 두었는데 딱 그만큼만 지내다가 바로 떠나야겠다고, 도착한 날 숙소로 가는 버스에서 결정했다. 내려야 할 때가 됐음에도 가방을 멜 수가 없었다. 나는 배낭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단단한 응집력으로 뭉쳐있는 사람들 사이를 억지로 파헤쳐가며 간신히 버스에서 탈출하고 가방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주변의 공기를 모조리 폐로 집어넣었다가 빼내는데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있는 말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XX” 


 숙소는 산동대학교 바로 옆이었는데, 지난의 명소는 거의 이 근처에 있다고 들었다. 바닥에 내쳐있는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지도를 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거리는 너무도 어두웠고 도무지 이곳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따금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거리를 쏘다닐 뿐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나는 분명히 지도가 가리키는 곳에서 멈추었다. 그곳엔 소름 끼치도록 허름한 건물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는데, 들어가면 염라대왕을 마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지도가 잘못된 곳을 가리키고 있거나, 내가 주소를 잘못 찍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여러 방법으로 길을 다시 찾아보았지만 결국 같은 곳으로 다시 올뿐이었다. 어깨가 무너질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싶어 지나가던 사람을 잡아 주소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 역시도 지도가 가리킨 건물을 손가락질하며 “6층이에요”라고 했다. 주먹을 쥔 채 엄지와 새끼손가락만을 펴 보이는 괴상한 손짓을 하며 말이다. 정말 이 건물이 맞는 건지, 여길 들어가야만 하는 것인가. 어쨌든 대학가의 길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결국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배낭은 어깨를 짓누르고 어두워서 계단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떤 층에선 자동으로 불이 켜졌는데 어떤 층에선 켜지지 않았다. 6층에 도착하자 청록색 철문이 하나 있었는데 마치 한국 점집의 입구처럼 보였다. 빨갛고 기다란 판에 금색으로 중국어가 쓰여있었으며, 그것이 문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이 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입구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민하는 동안 자동으로 켜졌던 불이 꺼져, 순간 주위는 어둠으로 가득 찼다. 그때 문 안에서 중국인 남자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적인 공포가 극으로 치달아 나도 모르게 철문에 중지 손가락을 두 번 두들겼다. 몇 초간의 고요한 침묵이 흐른 후 이내 철문이 “철컹” 열리더니 푸짐하고 인상 좋은 아줌마가 나왔다. 첫눈에 비친 이곳은 분명히 가정집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인척 꾸며놓은 가정집이었다. 나름 카운터도 만들어 놓았는데, 아줌마는 종이를 한 장 꺼내어 이름과 여권번호를 적으라고 했다. 체크인이 끝나도 키를 주지도 않아 내가 묻자, 문 앞에서 철문을 두드리면 열어주겠다고 했다. 거실은 로비로 쓰이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앉아서 노트북으로 무언가 하고 있었다. 아마 좀 전에 소리 지른 남자인 듯했다. 생각보다 내부는 넓었으며 방은 모두 세 개가 있었는데 그중 두 개는 여성전용, 한 개는 남성전용으로 쓰이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 내가 들어가 이틀간 묵을 곳이었다.  



 방에는 2층 침대가 전부 4개 있었는데 한 자리를 제외하곤 빈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빈자리를 차지하면 되는 것이었다. 다들 어디 갔는지 없었고, 문 바로 옆 침대에 앉은 한 친구가 내게 인사했다. 나는 짐을 풀기 전에 먼저 그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그러고 나서 더 이상 할 줄 아는 말은 없었다. 그래도 산동대학교 바로 옆에 있는 숙소라 영어가 조금은 통할 줄 알았지만 역시나 하지 못했다. 방 이곳저곳에 빨래가 너저분히도 걸려 있었는데, 이렇게 빨래가 걸려있다는 것은 이들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해주었다. 나는 정말 이 가족적인 분위기의 게스트하우스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로비라고 부르고 사실은 거실인 저곳이 그저 남의 집 거실 같이 느껴졌다. 내가 저곳으로 나가면 가족의 일상적인 분위기를 침묵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았다. 방에 있으면 거실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그러니까 웬 중국 가정집에 들어와 7명의 아들들과 한 방을 쓰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다인실을 쓰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로비 같은 곳이 필요한데 그런 곳은 없었다.  

 아까 인사한 친구가 내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내게 줄곧 말을 걸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번역기를 켰다. 지겹도록 똑같은 질문이었다. 북한이냐 남한이냐, 중국엔 왜 왔냐, 어디를 거쳐 왔냐, 지난엔 왜 왔냐, 앞으론 어딜 갈 것이냐 와 같은 뻔한 것들 말이다. 나는 대답을 하며 짐 풀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성의껏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짐을 다 풀 때쯤 방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고, 짧은 인사를 마치고 내게 관심을 보이던 세 명과 대화했다. 서로 번역기를 사용하며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이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를 그만두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설상가상 이 녀석들은 입 냄새가 지독히도 났다. 그러니까 기차를 타기도 전부터 난리통을 겪고 하루 종일 중국어를 듣다가 이들의 지독한 입 냄새까지 맡으니 정말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이제 좀 쉬고 싶다고 하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지겨운 대화를 마치고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중국 가정집이 아무래도 적응이 잘 되지 않는 탓에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들은 내가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대화를 하고 나면 아무리 적응하기 어려운 곳에서라도 이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러니까 내가 이들을 찾을 때는 심적으로 몹시 힘든 상태이니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징징거리고 싶다는 뜻이다. 나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보고 싶은 누군가를 찾았다. 그들과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이 숙소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니 기분이 좀 풀렸다. 그리고 목소리가 듣고 싶어 통화를 했다. 인터넷 상태가 좋지 않아 이내 끊어야 했지만 잠깐이라도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긴장이 풀리며 피곤이 몰려왔다. 그런데 아까 거실에서 소리 지르던 남자, 이 남자는 아까부터 줄곧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내가 숙소에 들어온 지 한 시간도 넘게 지났음에도 끝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늦은 밤에 어째서 저렇게까지 노래를 불러대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겠는데 그것을 중국어로 듣자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씻으러 가면서 남자를 한 번 힐끗 보았는데 자기 얼굴만 한 마이크를 들고 있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눈을 뜨니 아침 9시쯤 되었다. 이미 모두 나가고 방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게으른 놈이라도 된 마냥 괜히 머쓱했다. 지난을 한 바퀴 둘러볼 계획으로 나는 대명호를 찾아갔다. 아무리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한 번은 둘러보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대명호는 무엇보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마치 군인들이 칼을 맞대어 예도 관문을 만들 듯 버드나무가 양 옆으로 줄지어 서서 나를 반겼고, 그 관문을 하나하나 통과할 때마다 나는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는 그곳을 도저히 지날 수 없던 것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을 걷고 있자니 여행자로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이방인으로서, 나는 그 무엇에도 얽매여있지 않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꽤나 분주하게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었는데, 그 어디에서도 나를 찾는 곳은 없었다. 이것은 승무원시절 끝내주게 아름다운 곳을 여행할 때나, 휴가가 생겨 여행할 때와는 분명히 다른 무언가 이다. 생각해보니 지각 같은 것은 잊고 지낸 지 꽤 오래됐다. 이럴 때면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사실 나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어렸을 땐 사람 많고 시끄러운 게 좋았는데 언제 이렇게 바뀐 거지? 바뀐 게 아니라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이상하다, 한국에선 마스크 쓰는 게 그렇게 답답하고 싫었는데 여기선 마음이 편안해지네. 아무랑도 대화하고 싶지가 않다. 혼자가 편하고 조용히 걷고 보는 게 좋다. 그런데 여행은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고 느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잘 모르겠고 그냥 귀찮다 사람을 대한다는 게. 그동안 사람에게 너무도 질려버린 것일까. 아무래도 혼자만의 침잠하는 여행이 될 것 같다.” 



 나는 나와 대화하며 여행했다. 생각이 참 잘 맞아 아주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언제 대화를 그만두고 싶은지를 정확히 알아내어, 그럴 때엔 조용히 있어 주었다. 반쯤 걸었을 무렵, 문득 한 남자가 보였다. 머리를 반듯하게 밀고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이 남자는, 아마도 화가인 듯 보였다. 신기하게도 예술가는 종종 머리를 아예 밀어버리거나 길러버리는 것이다. 나는 같은 풍경을 담는데 몇 초도 할애하지 않았건만, 이 남자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그리고 언제까지일지도 모른 채 한 장면을 담기 위해 온전히 내면의 세계에 집중해있었다. 나는 이 남자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뒤로 섰다. 그리고는 그가 그리는 그림을 가만히 봤다. 정말 지독히도 못 그렸다. 실력이라곤 형편없었다. 붓을 든 손은 나름 휘갈기는 짓을 하며 색을 섞고 붓질을 해댔지만, 가까스로 무엇을 그리는 것인지 윤곽만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그를 힐끗 보고 지나칠 뿐이었다. 누구라도 이런 그림에 자기 시간을 할애해가며 구경하진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림은 볼품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그리는 그림이 무척 좋았다. 왠지 모르게 그가 그리는 그림에 빨려 들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는 그림을 그리면서, 뒤에 누가 서있는지도 모른 채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그에게 마음이 갔다. 나는 그 모습을 갖고 싶었다. 결국 그를 방해하고 말았다. 뒤에서 “찰칵, 찰칵”소리를 내며 그를 찍어대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찍히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오로지 그림에 집중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다음 목적지인 시안으로 가야 했기에 떠나기 전날 밤 기차표와 시안에서 지낼 숙소를 예약했다. 시안은 무척 기대하고 있는 도시였으며 오래 쉬어갈 생각이었다. 기차는 시안에 이르기까지 약 12시간 정도 걸리는 데다가 밤 10시가 넘는 늦은 시간에 출발하기 때문에 처음으로 침대 좌석을 예약해보았다. 그리하여 숙소와 기차표 예약으로 꽤 많은 돈을 지출해야만 했는데, 무엇보다 나는 얼른 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다음날, 체크아웃을 하고 방에서 자리를 비웠지만 밤 10시 기차였기 때문에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그런 상황을 알고 푸근한 주인아줌마가, 그때까지 숙소 거실에서 지내다 가도 좋다고 호의를 베풀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사람들과 불편한 분위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매우 이른 시간에 숙소를 빠져나왔다. 저녁 6시에 숙소를 나왔으니 정말 이른 시간이었다.  


 지난 기차역에 도착하니 오후 7시쯤 되었다. 여전히 기차 출발까지 3시간이나 남아있었다. 티켓부스는 여유로웠으며 이미 발권도 한 번 해본 터라 어렵지 않게 기차표를 받았다. 다시 시간을 확인해보니 7시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아, 어디 카페 같은 곳이라도 가서 인터넷이나 하며 시간을 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여유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어떤 명확한 의식을 갖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무심코 기차표를 한 번 훑어보았는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아무리 중국어를 못한다 해도 날짜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고, 기차표에는 2017년 11월 23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2017년 11월 16일인데, 발권하는 저 여자가 무언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휴대폰을 켜고 내가 예약한 날짜를 확인하자마자 머리가 핑 도는 듯했다. 11월 23일, 엉뚱한 날짜에 예약을 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눈물이 무척 많은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약한 아이로 평가되었는데, 그 이유가 싸우기도 전에 눈물을 보여버렸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에게 눈물은 패배의 의미이기 마련이다. 나는 지금도, 슬프거나 화나거나 억울하거나 무언가 감정이 요동칠 때면 눈물을 보인다. 안 그래도 두려운 늦은 밤의 중국 기차역에서 극도로 긴장을 하자 눈물이 핑 돌았으며 속눈썹 아래에 간신히 매달려 달랑거릴 지경이었다. 어깨에 지고 있는 배낭이 깃털만큼 가볍게 느껴졌다. 나는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어떻게, 어떻게”라고 중얼거리며 드넓은 중국 기차역을 몇 바퀴고 돌다가 문득 몹시 두려워져 구석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다가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으며 티켓부스의 줄도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다시 줄을 서서 그녀를 마주할 순 있지만, 티켓 날짜가 잘못되어 오늘 날짜로 바꿔달라고 어떻게 중국어로 말해야 하나” 번역기를 돌릴 수도 있었지만, 중국 기차역에서 발권해주는 여자들은 굉장히 짜증이 많고 성질이 괴팍했다. 나는 도무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문득 만의가 떠올랐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의 번호를 찾아 만의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받지 않았다. 두 번, 세 번을 해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배낭을 멘 채로 기차역 바닥에 주저앉아 좌절하고 있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끊임없이 흘러만 갔고, 오히려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시계를 볼 때마다 몇 분씩 지나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한번 만의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마침내 만의가 전화를 받았다.  


“만의야 나야, 내가 기차표를 샀는데 실수로 엉뚱한 날짜를 선택해버렸어. 떠날 준비를 이미 다 마치고 나와서 밤에 혼자 기차역에 있는데, 이거 오늘 날짜로 교환이 될까?”라고 내가 묻자 만의가 “네, 할 수 있어요 형. 일단 다시 줄 스시고 그 여자한테 전화 바꿔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확실한 대답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만의에게 끊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만의 에게 “저 괴팍한 여자가 티켓을 온전히 바꿔줄까?”라고 묻고, 대답을 듣고 나서도 또다시 “바꿔주겠지?”라고 수십 번을 되물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두꺼운 유리장막 안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휴대폰을 넘기며 전화를 받아달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이 여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잔뜩 짜증을 내었는데, 내 귀엔 그저 “꺼져”라고 들리는 듯했다. 나는 눈꼬리를 가능한 한 바짝 내리고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제발, 전화를 한 번만 받아주세요” 그러나 그녀는 지독한 냉혈한이었다. 입을 마이크에 바로 갖다 대고, 그녀는 낼 수 있는 성질이란 성질은 전부 끌어다가 뱉어냈다. 그런데 그때, 뒤에 있는 한 남자가 어색한 영어로 내게 “전화받을 수 없데요”라고 했다. 나는 그 남자를 덥석 붙잡고 티켓을 오늘 날짜로 바꾸어야 하는 상황을 급하게 설명했다. 이 남자는 알겠다고 말했으며 일단 나는 옆으로 밀려났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다시 받자, 만의가 “형, 그 남자 바꿔줘요”라고 했다. 나는 그 남자에게 휴대폰을 들이밀며 “한 번만 받아주세요”라고 부탁하자,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남자는 만의와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는 내게 다시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만의와 남자 두 사람 모두 내게, 기다려보라고 했다.  


 잠시 후 남자는 자신의 기차표 발권을 마치고, 창구 여자에게 내 기차표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유리장막 안에서 나를 노려보던 그녀의 표정을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오물이 잔뜩 묻은 쓰레기라도 보는 마냥 나를 째려보며, 짜증이 가득 섞인 채로 묻는 것도 많았다. 그녀의 대답은 전부 그 남자가 대신해 주었고 마침내 내 손에는 오늘 날짜의 기차표와 두 장의 영수증이 함께 쥐어졌다.  

 나는 나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그 남자에게 고맙다며 두 손을 꼭 붙잡고 고개를 수 차례 숙였다. 그 남자는 내게 괜찮다며 나지막이 웃어 보이고 금세 떠났다. 나는 그토록 절박했던 상황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뒤에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몰랐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어떤 절차에 의해 기차표가 오늘 날짜로 교환됐으며 내 손에 쥐어있는 두 장의 영수증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는 만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영수증을 찍어 보내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형 기차표 잘 바뀐 것 맞아요. 그리고 두 장의 영수증은 기차표 바꿀 때 청구된 수수료인데 그 남자가 대신 내준 모양이네요” 


 나는 그것을 들은 즉시 남자가 떠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모습을 찾았다. 좀 전에 한 감사의 표시로는 너무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는 이미 멀리 떠나고 없었다. 게다가 너무 정신이 없던 탓에 남자의 얼굴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순간 나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몹시 혼란스러웠다. 오만 가지의 감정이 뒤섞여 극도로 지쳐버렸고, 나는 만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한번 하고 기차역에 주저앉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8시 45분을 지나고 있었으며, 출발 시간까지 1시간 15분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넋을 놓고 앉아 있으니, 기차역을 어슬렁거리는 중국인들이 어떻게 하면 내 짐을 훔쳐갈 수 있을지 입맛을 다지는 듯했다.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났다. 나는 힘겹게 다시 일어나 짐을 챙겨 들고 기차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기실에는 수백 명의 중국인이 바글바글 모여있었으며 내가 배낭을 메고 등장하자 그 수백의 눈이 내게 몰렸다. 순간 속이 울렁거렸으며 얼굴이 푸석푸석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징그러운 인간 떼가 나를 볼 수 없는 구석을 찾아가서 벽을 보고 앉았다. 그렇게 잠시 눈을 뜬 채로 기절해있었다.  



 이윽고 기차가 왔다. 의자에 앉아있던 수백의 인간들이 동시에 일어나 기차를 타러 질서 없이 몰려드는 꼴을 보고 있자니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애써 휴대폰을 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사람들이 거의 들어갔을 즈음 나도 힘없이 일어나 다시 배낭을 메고 들어갔다. 그러나 꽤나 지쳐버렸음에도 처음 마주한 기차 침대 좌석은 흥미로웠다. 침대는 삼층으로 되어있었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층을 선호했으며 가장 비싼 자리였다. 나는 가장 저렴한 삼층 자리였는데, 어찌나 높던지 남의 침대를 밟고 올라가야만 했다. 나는 배낭을 머리 위로 힘껏 들어 올렸으나 너무도 높아 한 번에 침대 위로 올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옆에 있던 중국인들이 도와주어 간신히 짐을 올리고 나도 올라갈 수 있었지만, 사실 그들도 내게는 물건을 훔쳐갈 수 있는 경계의 대상일 뿐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자세를 바로잡고자 몸을 비틀며 허리를 살짝 들었는데, 머리를 천장에 박아버렸다. 누운 채로 팔을 뻗으면 차마 다 펴지지도 않고 천장에 손바닥이 닿았다. 침대에서 내려가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침대를 밟고 내려가야 했으며 다시 올라갈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연 사람들이 가장 기피할 만한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자리는, 정말 나에게 완벽한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자리를 잡고 누우면 눈 앞에는 오직 천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래에서 누가 지나다니며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전혀 보이지 않아 신경 쓰일 것이 없었고, 심지어 귀마개까지 끼어버리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상태가 됐다. 그렇게 누워있는 채로 기차가 크게 한 번 ‘덜컹’이며 출발했다. 기차가 속도를 높이면서 흔들거리자 내 몸도 그에 따라 같이 흔들거렸는데, 침대를 흔들어 주면 아기가 더욱 잠에 잘 들듯이, 묘하게 평온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긴장이 풀리면서 금세 죽은 듯 깊은 잠에 들었다.  


 나는 꿈도 꾸지 않고 정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침 9시를 지나고 있었으며 곧 한 시간 삼십 분 후면 시안(XIAN)에 도착할 것이었다. 한국에선 경험할 수 없었던 기차 침대 좌석에 엄청난 매력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나는 도착하기 전에 미리 사온 컵라면을 먹으려고 침대에서 처음으로 내려왔다. 기차 한편에 마련된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붓고 가져와서 창 밖을 보고 있었다. 밤새 느낀 평온한 기운이 아직 남아있어, 여유로운 이 시간이 좋았다. 그러나 이들은 놓치지 않고 이 시간을 처참히 깨부쉈다. 기차 승무원이 내게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걸어대는데, 알아듣지 못한다고 수십 번을 이야기해도 줄곧 같은 말을 걸어댔다. 순간 스트레스가 다시 극으로 치달았다. 이 승무원은 지금껏 본 중국인중에서도 가장 끈질겼다. 라면이 불어 터져가도록 똑같은 말을 걸어대는데,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놈은 옆에 있는 중국인과 “한국인, 한국인”하며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떠나버렸다. 그것이 한국인을 욕하는 말이었던 아니던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도 못할 만큼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이윽고 기차는 정확한 시간에 시안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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