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하루를 기차에서 보낸 보람이 있었다. 청두의 날씨는 내가 지나온 도시들에 비해 비교적 포근했다. 한낮에 배낭을 메고 걷자니 오히려 땀이 흐를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조금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동남아시아를 만날 수 있다. 조금이라는 것이 한국에서 러시아까지 가버릴 수도 있는 거리지만, 어쨌거나 나는 지금 중국에 있으니 ‘조금만 더 가면’이 맞다.
나는 시골의 어느 작은 마을이나 지도마저 무관심한 오지에 있을 때, 설렘을 느낀다. 그것은 이를테면 세상의 깊숙한 곳에 발을 디뎠다는 쾌감(이럴 때 나는 꼭 지도를 켠다), 시간이 없었다면 오지 못했을 곳이라는 해방감, 어쩌면 이곳이 변심하여 나를 해칠 수도 있다는 긴장감 같은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를 설레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오지를 찾는 이유라면, 도시는 그로 인해 지친 마음을 달랜다. 아무튼 감정이란 것은 좋든 나쁘든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오지에서의 생활이 지속되면, 나는 외로워지고 지쳐버린다. 이럴 때면 도시가 그리워진다. 마치 배낭 안에서 시들 거리다 죽어가는 전자기기들을 다시 충전해주어야 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시든다. 사람을 만나서 대화도 해야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 커피도 한 잔 마셔야 한다. 무엇보다도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이, 나에게는 오후 테라스의 햇빛 같은 것이다. 그렇게 충전이 되어 갈 때 즈음, 다시 다음 오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지나온 곳보다 더욱 외지고 짜릿한 곳으로, 그렇게 점점 나의 세계를 넓혀가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점점 세계를 좁혀간다.
배터리가 깜빡였다. 나는 청두를 매우 기대했다. 시안에 있을 때 만났던 서양 친구들도 청두로 간다고 했었고, 숙소도 꽤 유명한 곳이었다.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왕이면 한국인을 보고 싶었고, 영어만 할 줄 안다면 외국인이라도 상관없었다. 이제는 혼잣말 말고, 대화를 하고 싶었다. 저 멀리 숙소의 간판이 보였다. 들어가는 통로의 벽에는 젊은 그림들이 너저분히 걸려있었고, 투어 프로그램들이 영어로 적혀있었다. 역시 젊은 그림은 너저분히 어지럽게 정신없이 걸려있어야 생기가 돈다. 로비에는 키가 작고 귀여운 여자 한 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고, 머리가 짧고 강한 인상의 잘생긴 남자가 서있었다. 두 직원은 영어를 할 줄 알았다. 나는 오랜만의 대화에 말이 조금 많아져 버렸다. “어디서 왔니, 중국에 온지는 얼마나 됐니, 우리가 진행하는 투어가 있으니 할 생각 있음 나한테 말해”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귀여운 여직원이 체크인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잘생긴 남자에게 “나 말고, 한국인이 얼마나 있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어제까진 있었는데, 오늘은 한 명도 없네”라고 했다. 나는 내가 한국인을 내쫓는 기운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시안에서 서양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건너편에 앉아있던 한국인 남자 두 명을 제외하면, 나는 지금까지 중국에 와서 한국인을 전혀 보지 못했다. 아마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을 섞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쉽긴 아쉬웠다. 나는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6인실의 방에는 침대마다 까만 커튼이 달려있었다. 나는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중요한 물건이 많이 든 가방은 왼쪽 발 밑에, 수건과 샤워타월은 각각 옷걸이에, 갈아입을 옷 몇 벌과 속옷 그리고 세면도구는 벽에 달린 작은 선반 위에, 그리고 충전도 해야지. 전자기기의 충전기를 콘센트에 꼽고 노트북을 머리맡에 두었다. “그런데 이 선은 뭐지?” 따라가 보니 전기장판이다. 잠자리를 방해하지 않을 만큼 물건을 정리하고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을 펴고 앉았다. 그리고 까만 커튼을 쳤다. 마지막으로 벽에 달린 작은 조명을 켜자, 내 공간은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서서히 뒤꿈치부터 종아리를 타고 허벅지 그리고 엉덩이까지 따듯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이지 오늘 밤은 포근할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옆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튼이 쳐져 있어서 몰랐다.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코 고는 소리가 우렁찬 걸로 보아 덩치가 꽤나 있는 친구 같았다. 오후 12시가 지났는데 아직도 자는 것을 보니, 어제 파티가 있던 모양이었다. 오늘 밤, 로비에서 맥주 한 잔 하겠구나 하고 은근한 기대를 했다. 나는 저 친구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짐을 풀고, 시내를 둘러볼 생각으로 나왔다. 지도를 확인하고 방향을 정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시내의 가운데로 먼저 가보는 것이 좋다. 보통은 그런 곳에 광장이든, 유명한 동상이든, 건물이든 아무튼 무언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그동안 다녔던 작은 도시들을 둘러보듯 여유롭게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대도시로 불쑥 찾아온 이유일까, 너무도 정신없고 복잡해서 멀미가 날 것만 같았다. 시내는 어찌나 큰지 걸어서 지도를 확인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흔하게 보이던 노점상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세련되고 깨끗한 가게에 디저트와 음료를 팔고 있었다. 온갖 고급 명품 매장이 즐비했다. 사천성답게 중국 향내를 물씬 풍기는 홍등이 걸린 고급식당이 많이 보였다. 나는 눈에 띄는 작은 골목을 정처 없이 쏘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곳은 어디부터 가야 할지, 무엇을 봐야 할지 몰랐다. 나는 한국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소위 청두 쇼핑거리라는 곳의 가운데에 서서 부모 잃은 아이처럼 가만히 지도만 들여봤다. 그리고 나는, 오늘은 숙소에서 쉬며 지도를 먼저 눈에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 숙소의 로비로 나왔다. 청두에서 봐야 하고, 해야 하고, 먹어야 하고 하는 이런 시시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아무래도 도시에서 하는 여행은 지겨웠다. 나에게 도시는 여행지가 아니라, 쉼터 이리라. 아주 조금 특이한 건축물, 억지로 만들어 의미를 부여한 조형물, 백화점 명품 쇼핑거리, 야시장 거리, 무슨 공원, 무슨 광장 이런 것들. 이런 것들은 모든 도시에 빠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판다 조형물이 백화점 건물 벽을 타는 것을 보러 여기까지 왔노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지내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몇몇 구경할 곳만 정했다. 참, 이곳은 음식으로 자부심이 대단한 사천성이다.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는 편은 아니지만, 부지런히 사천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천성의 음식은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7시를 넘겼다. 나는 투어를 나갔던 외국인들이 로비로 몰려와 술을 마실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아직 로비는 조용했다. 내 뒤에 중국인 두 명이 저녁식사를 하며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아직 이른 시간인가 싶어 일단 방에 들어갔다. 낮에는 보지 못했던 친구가 있었다. 나랑 같은 침대의 2층을 쓰는 친구였고, 중국인이었다. 내게 중국어로 인사를 걸어왔다. 나는 한국인이고 중국어는 할 줄 모른다고 했다. 이어서 이 방에 있는 친구들 국적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하길 “응, 다 중국인이야” 나는 “그래?”하고, 오늘 고된 하루였다는 척 한숨을 깊게 쉬었지만, 사실은 매우 답답해서였다. 또 전부 중국인이다. 시안이 그리워졌다. 나는 두 시간쯤 후에 다시 로비로 나가보았지만 여전히 중국인 몇 명이 소파에 벌러덩 누워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침대에서 코를 골던 친구는, 단지 늦잠이었다. 파티는 없었다. 나는 침대로 돌아와 까만 커튼을 쳐버렸다.
내가 중국인들과 지내는 것을 이토록 꺼려하는 이유가 오로지 불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나와 중국인들의 상반된 ‘성질의 차’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에 따라서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이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매우 예민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가 있다. 도대체 이어폰을 끼지 않는 것. 문화라고 할 수도 없는 이것을, 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 번 양보해서 기차나 지하철, 카페와 같은 곳은 이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이해라기보다는 포기가 맞겠지만. 그러나 쉬어야 할 숙소마저 몇 시간 동안 게임, 드라마, 영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누구라도 미쳐버릴 지경이다. 한 번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니까 비교적 이른 시간이지, 12시를 넘은 시간이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억지로 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한 녀석은 스피커를 틀고 영화를 보고 있었고, 다른 녀석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놈은 통화마저 스피커폰으로 했다. 내 위에 있는 놈은 뭐가 그렇게도 불편한지 끊임없이 움직여대는 통에 침대는 삐걱삐걱 몸살을 앓았다. 나는 이날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전부 닥치라고 소리를 지를뻔했다. 그러나 내가 이들에게 시끄럽다고 말해봐야 왜 화를 내는지 이해도 못할 것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귀마개를 꺼내 귀에 꼽고 제발 잠이 들기를 빌고 빌었다.
일반화시킬 순 없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중국인들은 몹시 무기력하고 게으르다. 적어도 나랑 같이 방을 쓴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그랬다. 이들은 평일에도 아침 11시는 넘어야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것이라곤 핸드폰을 보는 일이다. 몇 시간이고 영상을 보든지 게임을 한다. 그리고 내가 하루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같은 모습이다. 나도 안다. 그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 끄고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알지만, 정말이지 그게 잘 안 된다. 예의 따위 씹어 삼켜버리고 그저 하루 종일 무기력하고, 정신없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버리니 말이다. 또 있다. 가끔 외출하는 친구들을 보면 씻고 나가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 바로 옷을 입고 나간다. 들어오면 씻나? 그것도 잘 모르겠다. 화장실에만 들어가면 평소와 다르게 한없이 조용해진다. 나는 기차에서도 양치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혼자만 깨끗한 척을 해댔다. 길거리를 다니면 “캬악, 퉤”소리를 사방팔방에서 들을 수 있다. 그래 좋다. 담배 피우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숙소나 꽉 막힌 버스, 기차 같은 실내에서 담배 피우는 것은 도대체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나 의심스럽다. 중국 담배는 한국의 몇 배는 독해서 그 냄새가 몹시도 역하다. 버스를 10시간 타면, 수명이 10년은 줄어드는 기분이다. 심지어 한 중국인은 내 가방 위로 담뱃재를 털었다. 꽌시가 전부 무슨 소용이란 말 인가. 생각해보면 대단할 것도 없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누군가 쩌렁쩌렁하게 소리라도 지르면 나는 심장이 벌렁 인다. 그나마 내가 중국에서 잘 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토바이와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좋은 도로를 두고 오토바이가 인도로 올라와서 달리는지, 왜 인도에서 사람들에게 클랙슨을 울려대는지, 사람들은 왜 당연하게 그것을 피해 주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가끔 어떤 오토바이는 앞이 텅텅 비어있어 클랙슨을 울릴 이유가 없는데도 떠나가라 울려댄다. 나는 저들이 “그저 재미있어서 저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해바라기 씨는 왜 그렇게 먹어 대는지, 어디를 가든 바닥은 온통 해바라기 껍데기 천지다. 기차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20분을 기다렸다. 정말 급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한 아줌마가 그 사이를 비집고 화장실 틈으로 왼쪽 다리를 먼저 넣었고, 몸이 따라 들어간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는 순간 욱했다. 닫으려는 문을 힘껏 밀어버리고 나오라고 했다. 순서를 지키라고. 아줌마는 나를 찢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아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기차의 모든 시선이 집중됐고 나는 갈기갈기 찢겼다. 나는 속으로 울분을 삼켜야만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이들이 좋아지지 않는다. 갈수록 스트레스만 쌓여갈 뿐이다. 배우는 것이 있다면,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것들뿐이다. 나는 청두에서 친구도 만들고 술도 마시고 사람의 향내를 맡으며 충전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패다.
청두에서 지낸 며칠은 그저 그랬다. 그저 인터넷에 ‘청두 여행’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곳들을 다녀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관광지를 둘러보고, 들어와서 사진 정리하고 다음날 무엇을 할지 정하고 잠드는 그런 일상이었다. 대화라고는 혼잣말, 책 읽기, 글쓰기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더 좋기도 하다. 나는 요즘 길을 걸으면서 혼잣말을 많이 한다. “오 맛있겠다, 이게 뭐지?, 아우 디러, 사람 엄청 많네, 아 시끄러워, 음식 한번 시키기 힘드네, 집이나 가야겠다, 오늘 맥주나 한 잔 해야지”같은 혼잣말들, 내게 하는 말들이다. 나는 당신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을 읽으며 너의 이야기를 들었고, 글을 쓰며 네게 이야기를 전했다. 우린 같이 맥주도 한 잔 하지 않았던가. 사실 지금 눈 앞에 서양인 한 명이 당구를 치고 있지만, 대화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 아마도 저 친구는 내가 중국인인 줄 알고 말을 걸지 않는 모양인데, 차라리 그 편이 좋다. 나는 지금 너랑 대화하는 것이 더 좋으니까, 점점 이게 좋다. 그나저나 도시에서 일주일을 흘려보냈더니, 다시 그 녀석이 찾아왔다. 내 안에서 줄곧 오지로 떠나라고 속삭이는 그 녀석이 말이다.
나는 ‘구채구’로 떠나기로 했다. 청두에서 버스를 타고 약 10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구채구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중국의 명승지이다. 고지대에 위치하여 새파란 호수 주변으로 구름이 잔잔하게 깔려있는 사진을 보고 단번에 이곳을 다음 목적지로 정했다. 줄곧 그래 왔다. 다음 목적지는 와서 정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버스터미널로 갔다. 중국을 떠나는 날까지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은 언제나 두려움의 장소가 될 것이다. 사람이 많으면 더욱 두려웠겠지만, 다행히도 사람은 많이 없었다. 여차하면 다시 줄을 서서 도전하면 됐다. 나는 이제 버스표를 사기 위한 기본적인 단어를 안다. 머릿속에 단어들을 순서대로 읊조리고 있었다. “구채구, 내일, 아홉 시” 내 앞으로 있던 다섯 명의 사람이 순식간에 빠져버렸고, 완벽한 준비가 되기도 전에 내 차례가 왔다. 내 앞에 백 명이 있었어도 완벽한 준비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유리 칸막이 안에 여직원이 있었고 우리는 대면했다. 나는 준비된 단어를 말했다. “구채구, 구채구!” 나는 항상 두 번씩 말했다. 그러자 여직원이 “없어”라고 하는 것이 들렸다. 나도 오늘 표를 사러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다음 단어를 말했다. “내일, 내일!” 그러자 아까보다는 조금 더 길게 대답했는데, 나는 다 알아듣지 못하고 또다시 “없어”만 들을 수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왜 없다는 것일까, 표가 벌써 다 팔렸다는 말인가? 비수기라 겨울에 가는 사람은 없을 텐데, 이상했다. 당황하여 내가 그 자리에 얼빠져 서있자 참을성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유리 칸막이 안의 여자는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당장 숙소도 내일 끝나고, 구채구 숙소까지 예약해둔 상태였다. 나는 옆에 있는 한 여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여자는 어떤 유니폼을 입고 있긴 했는데, 직원은 아닌 것이 아무튼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였다. 나는 “구채구 가는 티켓이 없다는데, 여기에서 사는 것이 맞아?”라고 물었다. 이 여자의 대답은 어떤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주변을 서성이다 다른 여직원을 찾았다. 이 여자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구채구 가는 표를 주지 않는다고 말하자 여자가 대답했다. “구채구 지진 때문에 폐장했어, 그래서 버스 안가” 이것은 문제가 맞다. 구채구에 지진이 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폐장한 줄은 몰랐다. 나는 이제 이런 문제에 대해서 크게 놀라지 않는다. 중국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나를 치고 들어올지도 모르는 야전에서 나는 꽤 단단해져 있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예약해둔 숙소를 취소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예약할 때 비수기인데도 비어있는 숙소를 찾기가 몹시 어려웠다. 폐장으로 인해 그랬던 것이었다. 다행히 예약 취소는 수수료 없이 해결됐다. 이제 다음 문제는 당장 내일부터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이것도 별로 문제가 아니다. 숙소를 하루 연장하고 어디로 갈지 정하면 되는 것이다.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꽤 설레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됐다.
나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로비로 나갔다. 항상 내가 앉는 자리, 두 명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빨간 천이 덮인 소파에 니스칠이 된 목재 테이블이 있는 자리, 테이블이 울퉁불퉁해서 마우스 쓰기가 영 불편했지만 나는 매일 이 자리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옆에서 내 신경을 지독히도 건드리는 저 중국인,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무자비한 연주였다. 자세히 보니 기타를 우산으로 썼는지 줄은 심하게 녹슬어있었고, 심지어 두 줄은 끊어져 꼬부라져있었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단단히 꼽고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데 있어서 내가 유일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만의의 약속이었다. 늦어도 21일까지는 충칭에 가야 했다. 청두에서 충칭으로는 동쪽으로 몇 시간만 가면 됐지만 약속 날인 23일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충칭에서 마냥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지금 내게 유일하게 풍족하도록 허락된 것이라곤 시간뿐인데도, 허투루 낭비하긴 싫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밤이 깊도록 고민은 계속됐다. 사실은 전부터 나를 끊임없이 부르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은 더욱 깊었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나를 불러왔는데 나는 지금까지 모르는 척했던 곳이다. 청두에서 서쪽으로, 그러니까 충칭 반대편으로 버스 타고 약 20시간을 가면 만년설산이 있다. 아시아의 스위스라니, 중국에 두 달이나 있으면서 어떻게 이곳을 가지 않을 것 인가. 그러나 문제는, 다시 동쪽 충칭으로 가려면 버스로 30시간도 넘게 가야 하는 거리였다. 자칫 잘못하다간 약속한 날에 충칭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는 좀 더 면밀히 따져보기 위해 날짜를 계산해보았다. 청두에서 설산까지 버스로 이틀(두 번 갈아 타야 한다. 7시간, 10시간), 설산 트래킹 이틀, 다음 트래킹 장소까지 버스로 하루, 다시 트래킹 이틀, 버스가 꽉 찼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한 이틀을 포함하면 약 9~10일 정도가 소요될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충칭까지 돌아갈 시간이 없다는 것. 결국 나는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이 문제를 해결했다. 계획은 다 세웠다. 그러나 아직 결정을 못했다. 이것은 당신도 겪어본 적 있는 고민이다. 자칫 일이 틀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가, 그것을 포기하고 안정을 선택할 것이냐 이다. 나는 티베트로 가서 네팔로 넘어가는 투어에 100만 원을 썼다. 내게 100만 원의 체감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당신의 100억과 같다. 온갖 걱정이 나를 휘감았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비수기라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 혹은 버스가 꽉 차 버린다면?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비행기가 갑자기 꽉 차 버리면? 혹시나 약속시간에 맞춰 충칭을 가지 못한다면? 안정과 불안정, 그 사이에서 정처 없는 고민이 계속됐다. 합리화 요정이 “그냥 무리하지 말고 충칭에 가서 편하게 기다리자, 어차피 앞으로도 걸을 일은 많아”라고 나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침 일찍 버스터미널로 가서 설산으로 향하는 첫 버스 티켓을 샀다. ‘캉딩’이라는 아주 작은 도시인데, 버스로 7시간을 가야 한다.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는 숙소도 없어, 직접 가서 찾아다녀야 한다. 이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새벽 6시에 ‘다오청’으로 가는 버스를 꼭 타야만 한다. 다오청까지는 10시간 정도 걸리는데 버스는 미리 예약할 수 없고 가서 사야 한다. 그리고 다음날, 다오청에서 야딩으로 가서 이틀간 설산 트래킹을 하고 다시 다오청으로 돌아와, 새벽 6시 버스 타고 샹그릴라로 10시간을 떠난다. 길이 험하기로 유명한 코스다. 샹그릴라에서 하루 지내고 호도협 트래킹 이틀, 그리고 리장에 도착해서 다음날 비행기 타고 충칭으로 가는 계획이다. 스케줄을 이해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도 계획을 이렇게 세워놓았지만 “그래서 어디서 어디로 간다고?”라고 묻는다면 “잠시만”이 먼저 나온다. 이 모든 것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한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어디서는 문제가 분명히 터진다. 비수기라 사람이 많이 없으면 버스가 뜨지 않는단다. 나는 그런 정보를 미리 얻을 능력이 없다. 해발 5,000m가 넘는 고산지대라 고산병이 터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고산병 약도 없다. 누구는 안정 속에서 안락을 누리지만, 누구는 안정 속에서 불안을 느낀다. 누구는 불안정에서 생기를 느끼지만, 누구는 불안정에서 갈 길을 잃는다. 무엇이 좋고 나쁘고는 없다. 자기에게 맞는 선택만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곳을 꼭 봐야겠다. 아니, 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근처까지 가서 “한 겨울에 여길 들어가려는 미친놈은 너 밖에 없어. 어서 꺼져”라는 말을 듣고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맞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