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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얀 Mar 29. 2020

월급 200만 원의 힘

시발 비용을 땡큐 비용으로 


글을 써서 먹고살고 싶다.


는 내 인생의 화두. 글을 쓰기 시작했던 서른부터 서른아홉 살이 된 지금까지도. 그 말인 즉, 아직 글을 써서는 먹고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든 인세로만 먹고살 수 있는 작가는 소수다. 책을 읽는 독자의 수는 점점 줄고 도시마다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래도 사람은 희망 하나로 버티는 종족이라 나는 매일 기도한다. 

글 써서 먹고살고 싶다,

글 써서 먹고살게 해 주세요.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는 말을 자세히 뜯어보면 결국 스스로 해결하란 말이다. 내가 나를 돕고 있어야 하늘도 기회를 준다. 하긴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자리에 앉아 글을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럼 다시 한번 내 인생의 화두를 읊어 본다. 


글을 써서 먹고살고 싶다.


글을 써서,

먹고살고 싶다


한 문장이 두 개로 부러진다.


글을 쓴다.

먹고 산다.


글을 쓴다. 그래, 일단 글을 쓴다. 먹고사는 건? 음...... 글 말고 먹고살 수 있는 길이 뭐가 있을까? 많지 뭐, 식당 알바도 있고 편의점 알바도 있고 일단 먹고살기만 하면 되는데. 그래. 어차피 아르바이트를 할 거면 치과로 가는 게 낫겠지. 그래도 경력이 있으니까. 치과 아르바이트. 그래, 치과에서 아르바이트하면 되겠다.



뭐지, 뭐가 이렇게 간단하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도 그렇게 근근이 살았다. 글로만 먹고사는 것이 안 되니 다른 일을 병행할 수밖에. 하지만 그때는 너무 분했다.


나는 왜 글로 먹고살 수 없을까

나는 진짜 열심히 썼는데

내 인생을 다 걸었는데

근데 안 되고........ 시발.....

세상은 불공평하다

망해라 인생....

이런 식으로 분통이 터지고 나를 몰라주는 세상이 미웠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하고 글을 쓴다고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처량했다. 



이번엔 다르다. 내게는 목표가 있다. 나는 결국 글을 써서 먹고살게 될 거고, 이 일은 언제까지나 템포러리일 뿐. 언제까지?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 때까지! 


좋다. 그럼 짱구를 굴려 작전을 짜 보자. 다시 치과에 가서 일을 하고 남은 시간에 글을 쓰자. 피곤할 거다, 물론 피곤하겠지. 근데 돈이 없으면 더 피곤하다. 그래 그건 그런데 결국 평생 안 되면 어쩌지?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의심과 불안은 무시하고 그냥 앞만 보자. 그게 아니라도 생각할 건 많다. 직장인과 작가, 셰어하우스 호스트, 이 세 가지 역할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효율적 일지 집중해보자. 사람 일 결국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상황은 예전보다 더 복잡해졌지만 이번에는 내가 나를 구하겠다 마음먹고 팔을 걷어 부쳤다. 하늘이 돕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돕자.


사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은행 감정가보다도 싸게 나온 조그만 빌라를 덜컥 계약해 버린 후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앞으로 남은 잔금일은 3개월. 은행 대출과 엄마에게 빌린 돈과 나의 전재산을 모두 뭉쳐 잔금을 맞춰놓긴 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취득세와 등기비, 부동산과 법무사 수수료, 이사비 등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달려 있었다. 생애 첫 부동산 거래다 보니 세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자, 자 시간이 없다. 나에겐 먹여 살려야 할 내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름 경력이 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찾기가 수월한 것이었다. "예술 보다 기술"이라고 운전면허도 1종 보통을 강요하던 집안의 분위기로 치기공소를 시작으로 치과계에 발을 붙였던 시간을 대략 모아도 10년은 되었다. 간단한 기공 업무부터 진료실, 데스크 코디네이터 업무부터 상담 실장까지의 경력이 있으니 치과로 돌아가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내가 치과계를 떠나 있으면서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버렸네? 요즘 같은 시절에는 1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변한다고 한다. 글을 쓰는 작가로 서른여덟 살(작년 기준)은 아직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치과계에서 그것도 아르바이트생으로는 서른여덟은 남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나이였던 것이다. 물론 나야 상관이 없지만, 치과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보통 치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2030대 초반의 여자들이라 나이 많은 아르바이트 생이 오면 이것저것 시키기가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다. 업주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나이도 많고 경력이 많기 때문에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돈을 더 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하니 나이 때문에 좀 부담스럽다고 단 번에 거절당했다. 기가 막혔지만 세상의 모든 문제는, 모두가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아는 나이. 그래 좌절에 기운 뺄 필요 없고 일단 면접을 오라 하는 곳이 있다면 무조건 바짝 엎드리기로 했다.   


원하는 날짜가 있나요?

- 여기 치과가 제일 바쁜 날이요

일주일에 몇 번 출근하고 싶나요?

- 여기 치과에 맞출게요 

원하는 시급이 있나요?

- 제가 좀 오래 쉬어서 그냥 다른 사람이 받는 만큼 주세요

그래도 경력도 되시니 어느 정도 생각한 시급이 있을 텐데요?

- 그냥 최대한 빨리 일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야간 근무가 있는 월요일 수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반. 화요일/목요일은 쉬고, 금요일/토요일은 출근. 야간진료가 있는 날은 좀 힘들지만, 그래도 주 4회 근무라면 주 3일은 글쓰기에 투자할 수 있으니 나로서도 나쁠 게 없었다. 수습기간 동안은 180만 원을 받기로 하고 바로 출근했다. 상담 실장으로 일했던 몇 년 전보다 너무 작아진 금액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돈은 내 능력을 보여주고 몇 달 뒤에 다시 협상해도 된다. 오랜만에 다시 하는 직장인 생활. 부자 책에 쓰인 대로 남들보다 10분 일찍 출근, 환자가 없을 때에도 여기저기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월급은 한 달이 되기 전에 이백만 원으로 올랐다.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는 말은 월급 이백만 원이 작아도 작지 않다는 말과 비슷하다


내 나이 올해 서른아홉, 주변 친구들의 월급에 비하면 작고 귀여운 금액이지만, 한 달에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이백만 원이 부동산 수익률로 치자면 5억짜리 상가 건물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얻을 수 있는 돈이다. (보통 부동산 수익률은 연 5%로 잡는다) 물론 나에게 그런 상가 건물이 있을 리 없으니 나의 금 같은 시간과 노동으로 맞바꿔야 한다는 건 살짝 쳐지만. 하지만 지금의 자수성가 부자들도 다 이렇게 시작했다 하니 까짓 나도 한번 해보지 모.


그렇게 느려도 늦지 않는 달팽이가 되어 한 달, 두 달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히 밤엔 눈을 감고, 아침엔 눈을 뜨는 루틴이 만들어졌다. 게다가 이게 왠 일? 4대 보험과 점심, 저녁, 간식과 커피까지. 프리랜서로 지내면서 모두 내가 감당했던 비용들을 직장에서 커버해 주는 게 아닌가? 행여나 셰어하우스에 공실이 생긴다 하더라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있으니 초조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직장인 놀이를 하며 잔금을 무사히 치르고, 이사를 하고, 셰어하우스를 꾸려가면서 글 쓰는 시간을 만들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6개월이 넘어 있었다.

1년의 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6개월. 

일단 단단한 목표를 가진 당신이 6개월 동안 직장에서 무사히 버텼다면 이제 달팽이가 바다를 건너는 방법이 생긴다. 어떻게? 레버리지 투자라는 배를 타고.


사실 직장은 4대 보험 내주고,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으로 이미 그 역할을 다 했다. 요즘 같은 저금리에 은행 대출이란 월세를 전세로 바꾸거나, 확실한 승부수가 있다면 은행 대출을 이용해 레버리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공부를 엄청나게 해야하지만.


아무튼 일요일 밤만 되면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출근이라는 것을 6개월만 이겨내면 두드리려는 자를 위한 기회의 문이 나타난다. 그러니 지금 받는 월급의 액수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 나도 과거에는 남보다 10만 원 20만 원 덜 받는 것에 자존심이 무너지고 평생 이렇게 이백충으로 무시당하면서 살 생각하니 막막했다. 그 답답함과 스트레스는 당연히 시발 비용으로 나가고, 시발 비용은 다시 탕진 잼으로 이어진다. 이 굴레가 결국 월 200의 뻔한 직장을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된다.


똥을 싸도 돈을 주는 직장.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곳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정녕 이 바닥을 벗어나겠다 싶으면, 확실한 목표를 세우자. 3년이면 3년, 5년이면 5년, 10년이면 10년. 그리고 평생 일할 에너지를 그 기간 안에 쏟아붓자. 대신 퇴근 후엔 호프집 대신 부동산을 다니든, 월차를 써서 경매 임장 투어를 하든, 블로그나 유튜브 관심 분야의 책을 씹어 먹으며 공부를 해야 한다. 물론 당장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은 시발 비용으로 나갈 돈을 막고, 직장이 있어 아낄 수 있는 돈을 감사한 마음으로 차곡차곡 모을 것. 


자, 그럼 내일부터 당장 시발 비용을 땡큐 비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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