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책 읽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내 주변엔 조언을 받을만한 부자도 없고, 내가 모르는 부자들이 나에게 시간을 내어 비법을 알려 줄 확률도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일단 도서관에라도 가야 빌 게이츠, 워런 버핏 같은 부자들을 -사진으로라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은 도서관은 나에게 낯선 곳이 아니란 사실이다. 나는 글을 쓸 때도 카페보다 도서관을 선호한다. 사방으로 쌓여있는 책들의 기운과 각자의 공부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 특히나 소음에 민감한 나는 그래서 카페 보다 도서관 열람실을 선호한다. (물론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전국의 도서관이 무기한 임시 휴관에 들어가는 바람에 카페 외엔 선택지가 없지만)
내가 주로 다니는 도서관은 부천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라고 하던데, 늘 열람실과 자료실의 문학 코너만 다녀서 다른 곳엔 뭐가 있는지 잘 몰랐다. 이 도서관의 자료실 중, 경제/경영/재테크 코너를 들여다 보는 건 거의 처음이었고 내가 제일 놀랐던 건, 정말로 전 세계의 부자들과 돈 관련 분야의 각종 전문가들이 그곳에 다 있었다! 책이 아니고서야 절대 만날 일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아이디어와 각종 지식들이 그곳에 책이되어 가득 쌓여있었다.
와 - 내가 모르던 세상이 또 있구나. 찬찬히 책들을 보면서 평소에 내가 궁금했던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사회주의인가] [세계경제포럼 분야의 AI 시스템 조달 가이드] [국제통화금융체제와 세계 패권] 같은 책을 집고는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는 건 뻥이고, 도통 아는 게 없으니 뭘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일단 제목에 [돈]이나 [부자]가 들어가고 쉬워 보이는 책들만 죄다 뽑았다. 한 번에 대출할 수 있는 책의 맥시멈이 6권인데, 결국 그렇게 고른 6권은 다 돈 어쩌고, 돈 어쩌고, 부자,부자,돈,돈 하고 있는 책이라 누가 봐도 돈에 미친 여자로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아쉽지만 마지막 한 권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맨 위로 올려두고 가려도 봤지만, 결국 대출을 하기 위해 바코드를 찍을 땐 다 들통이 나고 말았다.
(삑) 젊은 예술가의 초상 (삑) 돈 $#%$# (삑) 돈 #$%^$% (삑) 부자#%#$ (삑) 돈^$#%
원래 은행가들이 모이면 예술을 이야기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 얘기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기필코 이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심정으로 오묘한 쪽팔림을 무릅쓰고 여섯 권의 책을 백팩 가득 욱여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몇 주째 그러길 반복.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 때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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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점 중 하나가 뭐든 빨리 배운다는 것인데 돈과 관련해서는 스무 권이 넘어가도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보통 웬만한 것들은 관련 책 몇 권을 보면 대충 감이 잡히면서 내것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나는 드라마 대본 쓰는 법도 그렇게 독학했다) 돈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넓고 깊은 것이고 그것을 나만의 스킬로 만들어내는 것도 정말 어려웠다. 그나마 한달 가까이 책을 읽으면서 건진 하나는 부자들은 공통적으로 독서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음...... 정말 이렇게 책만 읽는다고 부자가 될까? 나는 책은 원래 많이 읽었는데두 그지잖아...... 하는 생각이 들며 이 방법이 정말 맞는 건지 의문이 들다가 번뜩 나의 Fucking Working day 시절이 떠올랐다.
때는 2014년. 나는 한국 나이 서른셋의 늦깍이 호주 워홀러였다.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는 Working Holiday Visa로 호주의 서부 Perth에 살았을 때 실제로 제법 많은 부자들을 만났다. 심지어는 그들의 프라이빗한 공간에 자주 들어갔다. 내가 호주에서 했던 여러 일 중에 하나가 바로 호텔 객실 청소였고, 그 일을 처음 배운 곳이 바로 그 유명한 손녀가 있는 세계 최고의 호텔 체인 H 호텔이었다.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건 호텔의 스위트룸이다. 스위트룸은 달콤하다 할 때 sweet 이 아니라 suits라는 의미로 두 개 이상의 공간이 (보통 호주의 5성급 호텔은 두 개의 침실에, 거실 겸 응접실이 하나) 있는 최고급 숙소로 보통 1박 요금이 최소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니 당연히 상위층 부자 고객들이 오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을 합법적으로 들어가서 샅샅이 뒤질 수 있었다. (물론 침대 이불을 갈면서 뭐가 딸려오지는 않았나 침대 커버를 샅샅이 뒤지는 것이었지만^^^)
보통 호텔 하우스키핑은 손님들이 체크 아웃할 때 빈 방 전체를 청소하는 일 (보통 25분이 근무 시간으로 인정된다, 스위트룸 같은 경우는 45분이 인정 되는데 초보자인 나는 늘 45분을 넘기고 어떤 날은 2시간까지 걸리기도 하는데 결국 인정되는 시간은 딱 45분이다)과 연속으로 숙박하는 사람들의 방에 들어가서 침구류를 갈아주고 새로운 수건과 어메니티를 놓아두는 짧은 청소 (이런 건 15분이 인정되는데, 방 전체 청소보다 요것이 짭짭하다)로 나뉜다. 그리고 그 짧은 청소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 맞아! 그때도 참 특이하다 느꼈던 것이 스위트 룸의 침대 옆 콘솔에는 꼭 책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권이 아니라 거의 늘 두세 권이었다.
많은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실제로 자수성가형 부자 중에 독서를 즐기지 않는 부자가 없다고 했다. 책이 아니라면 신문, 만에 한 명이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본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어 한다거나 책이 가진 힘에 대해서는 반드시 인정할 것이란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세계 최고의 부자군에 드는 워런 버핏은 출근을 하면 매일 500페이지 분량의 기업보고서를 읽는다고 한다. 500페이지 서류라면 단행본으로 2권쯤 된다. 그리고 2018년 기준, 한국 성인의 40%는 1년 동안 단 한권의 책을 읽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부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격차는 이렇게나 확실하다.
아무튼 나는 이해가 되던 안되건 도서관에서 한 주치 읽을 돈 책들을 빌려왔다. 정말 알찬 내용의 책은 서점에서 구입했고, 그게 아닌 책이라면 중요한 부분 몇 군데를 체크해 뒀다가 타이핑을 해서 프린터로 출력해 독서 파일을 만들었다. 아직은 부자들만큼 돈도 없고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발해 낸 나만의 스킬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1년이 가까이 흘렀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114권. 서점에서 산 책은 얼추 30권. 그리고 여기저기서 빌려 읽은 책까지 합하면 150권을 훌쩍 넘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은 많이 변했다.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출근을 하고 있었고, 남들 보다 일찍 도착해 경제 신문을 읽으며 주식 공부했다. 퇴근 후엔 책을 읽고 독서 파일을 만든다. 드디어 지난달 월소득은 3,685,000원으로 2018년 연소득의 80%까지 왔다.
남들에게는 별 거 아닌 스코어로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글만 쓰며 넝마처럼 살던 사람이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월급 외 파이프라인을 단 시간에 만들어가는 것은 책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직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나는 꼬꼬마지만, 책은 믿어도 좋다. 책은 가장 쉽고 저렴하게 정보를 구할 수 있는 도구이고, 빠른 시간 내에 답을 알려주는 선생님이다. 심지어 도서관에서는 이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친절하다. 그러니까 부자가 되고 싶은 당신,
KEEP CALM & READ A 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