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다음의 시에서 작가가 ‘외국어’에 비유한 원관념은? (2021학년도 수능 연계교재 EBS 수능특강 국어영역
문학 p.36 2번 문제 변형 정답은 밑에서 확인하세요)
배꼽을 위한 연가 5
김승희
인당수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저는 살아서 시를 짓겠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을 구하지 못하여 당신이 평생을 어둡더라도 결코 인당수에 빠지지는 않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여기 남아 책을 보겠습니다.
나비여, 나비여, 애벌레가 나비로 날기 위하여 누에고치를 버리는 것이 죄입니까? 하나의 알이 새가 되기 위하여 껍질을 부수는 것이 죄일까요?
그 대신 점자책을 사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점자 읽는 법도 가르쳐 드리지요.
우리의 삶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외국어와 같은 것― 어디에도 인당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스스로 눈을 떠야 합니다.
나는 국어 강사다
나는 학원에서 고등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친다. 혈기를 절제하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책에 시선을 고정하려 애쓰는 학생들에게 문학, 비문학, 문법을 가르친다. 비문학이나 문법은 명확한 지식이 있으니 덜하지만 문학을 가르칠 때면 종종 위화감이 든다. ‘맞는’ 해석이 과연 존재하는지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도 나에게도 문제를 맞히기 위해서는 필요한 지식이라고,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득하면서 수업을 해 나간다. 시와 소설을 함께 읽고, 극과 수필에서 중요(하다고 누군가 정)한 부분을 찾아 밑줄을 긋는다. 내신 시험을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작품을 통째로 외울 것을 강요하고, 수능을 위해서도 연계 교재에 나온 작품은 외울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내가 고등학생 때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들은 여전히 실려 있다. 익숙한 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학생 때 내가 처음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더 이상 느끼기는 힘들다. 글을 읽으며 감동 받던 학생은 어디로 가고, 지식 전달자가 되어 같은 해석을 반복하는 강사가 남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런 작품들이 반갑다.
‘연가’
수업을 준비 할 때부터 시를 읽으며 울컥했다. 시각장애인인 어머니를 위해 죽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는 단호한 딸. 그 딸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점자책을 사 드리’고, ‘점자 읽는 법’을 가르쳐 드리는 것이 그녀의 사랑이다. 일방적인 희생으로만 유지될 수 있는 관계를 어찌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어머니가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면, 화자는 시각장애인의 딸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 그녀의 선택은 ‘인당수에 빠’져 기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점자 읽는 법’을 가르쳐드리는 현실적 대안이었다. 화자의 방식은 개인주의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기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스스로 눈을 떠야 합니다.’라는 그녀의 당부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
학생들에게 강의 할 때에는 이런 이야기를 깊이 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내 개인적 해석보다 시험에 나올만한 지점들을 궁금해 한다. 물론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교육 체계의 문제다. 대부분의 교과서는 문학을 ‘가치 있는 것을 언어로 형상화한 예술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문제를 풀어야 할 때만 글을 읽는 학생들에게 문학 작품은 시험을 보기 위한 준비이고, 대학생이라는 불투명한 미래를 얻기 위한 지루한 길이다. 나는 그래서 시에서 긍정적인 소재와 부정적인 소재를 찾아 동그라미와 세모로 표시하고, 그것을 수식처럼 그려서 칠판에 필기한다. 나는 학생들이 이 시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들에게 문제집에 실린 시는 이미 차고 넘치기 때문에 이 시 한 편을 깊이 감상할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국어 강사가 아니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씁쓸한 현실이다.
(필자의 강의노트 중)
술집에서 중학생을 가르치는 친구와 이 시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다. 술기운과 감정에 휩싸여 둘 다 눈물을 그렁거리다가 시인의 다른 시를 찾아보기도 했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자기 취향의 시인을 만나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김승희, 희망이 외롭다, 문학동네)
이 글은 국어 강사로서 만난 작품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다. 시험에는 안 나오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시험에 나오는 작품들. 학생들 앞에서 드러내지 못한 나의 개인적인 감상을 풀어내보려 한다.
Q. 다음의 시에서 작가가 ‘외국어’에 비유한 원관념은?
A. 우리의 삶
(*원관념 – 어떤 말을 통하여 달리 나타내고자 하는 근본 생각 출처 – 네이버 Basic 고교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