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고 얻은 것
삼십 대에 들어서니, 삶의 속도와 무게를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여전히 삶은 녹록지 않고, 내가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더 이상 무너지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실패와 좌절은 인간을 발전시키고 성숙하게 만드는 중요한 경험이다. 좌절에도 내성이 있는걸까. 자주 겪으니 사람이 더욱 단단해진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찾아와도 결국 지나갈 순간임을 알기에 순간의 고통에 쉽게 휘청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내가 완성되기까지, 과거의 나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썩어가는 나무처럼.
통장은 ‘텅장’이 되어 있었고, 변변찮은 직업 하나 없이 이십 대의 끝자락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모아둔 돈? 없다.
안정된 직업? 없다.
연애? 말아먹었다.
이 정도면 빙고를 맞은 셈이었다. 또래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은 자존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매일이 우울했고, 죽고 싶을 정도로 답답한 기분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다.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통장 잔고는 고작 200만 원 정도였다. 혹시 내가 욜로족이냐고? 천만에.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가득 찬 사람이었다.
흔한 이야기지만, 어릴 적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다. 집에 자동차 한 대 없었기 때문에 여행이나 나들이도 가본 적이 없고, 제대로 된 외식을 해 본 기억도 없다.
그 부족함은 어쩌면 내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찍 가르쳐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돈에 진심이었다.
아이들은 모르는 것 같아도, 사실 많은 것을 안다.
태어나고 열 살까지는 화장실이 집 밖에 있는 곳에서 살았다. 심지어 그 화장실은 푸세식 화장실이었기 때문에 심한 오물 냄새와 파리떼가 들끓었다. 결국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유아변기를 사용해야 했고, 변기를 비우는 일은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해주셨다.
그러다 처음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을 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집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궁궐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다른 아이들에겐 당연한 일이 내겐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그래도 외동인 덕분에,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나름 누리며 사랑받은 사실은 부정하지 않겠다.
“나는 커서 꼭 부자가 될 거야.”
이 말을 속으로 되뇌며 수 없이 다짐했었다. 열심히만 살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순수한 어린아이였다.
열일곱 살이 되자 당시 샐러드바로 유명했던 브랜드 피자집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최저 시급은 4천 원 초반대였는데, 한 달 열심히 일해 40만~50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 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덕분에,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내 통장에는 이미 1천만 원이 넘게 모여 있었다.
지금도 큰돈이지만, 스무 살에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다. 한 번 돈을 모으는 재미에 맛 들이자 저축에 가속도가 붙었고,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6천만 원 넘게 모으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 속도라면 금방 부자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는 왜 텅장이 되었을까?
사실 이유는 빤하다. 평생 전월세를 전전하던 우리 집은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집값은 치솟았고, 집주인은 전세를 월세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낡은 집이 월세 100만 원이라니! 1970년도에 지어진 오래된 5층 빌라였는데, 신기하게 엄청 작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었다. 70년대 당시 최고의 신식 건물이었다며, 집주인 할아버지는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래도 다행히 집주인을 잘 만나, 10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 수 있었지만, 집 없는 서러움은 여전히 우리 가족을 곤란에 빠뜨렸다.
엄마와 아빠는 늘 돈 문제로 다퉜고, 당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집도, 이런 상황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나는 한참 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결국 엄마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내가 모아둔 돈 다 줄게. 대출을 껴서라도 집을 사자.“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뿐인 딸이 열심히 일해서 모아둔 돈을 보태겠다는데, 고민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긴 대화와 설득 끝에, 결국 이사가 결정되었다.
엄마의 평생소원은 내 집 마련이었다. 남들처럼 아파트를 갈 형편은 안되었지만, 사실 우리 가족은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의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3평짜리 테라스가 붙은 경기도 신축 빌라를 우리의 새 보금자리로 삼기로 했다. 흔히 빌라는 매매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어차피 이사 갈 일 없이 안정적으로 거주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큰 고민은 하지 않았다.
이사할 집 현관문에 [계약 완료]라고 붙은 A4용지가 뭐라고 그렇게 설레던지. 아무도 살지 않았던 새 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괜히 두근거렸다.
새 집으로 이사하던 날, 낯선 동네와 낯선 집이었지만, 마음 한편에 안정감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나는 모아둔 돈 전부를 부모님께 드렸다. 이십 대의 절반을 갈아 넣은 돈이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순식간에 잔고가 바닥난 통장을 바라보며 혀끝에 씁쓸함이 느껴졌지만, 기뻐하는 부모님의 표정을 보고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그 표정 뒤에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서려 있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돈은 다시 모으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
태연한 척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걱정이 밀려왔다.
‘정말 다시 모을 수 있을까? 그만큼 다시 모으려면 얼마나 걸리지?’
내겐 또래보다 많이 모아둔 돈이 유일한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고작 돈 몇천에 세워진 자존감은 돈이 사라지면 쉽게 무너질 나약한 것이었다.
세상은 돈으로 굴러간다. 개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거주하는 집, 입고 있는 옷, 배를 채울 음식, 지금 이 글을 읽기 위해 사용 중인 핸드폰과 태블릿 pc, 그 기기를 충전하는 전기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따져보면 사실 모든 것은 돈을 지불하고 얻는 대가이다.
그래서 나도 우리 가족의 행복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보금자리를 얻었다. 합당한 대가였지만,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스물다섯, 텅장이 된 순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시련과, 또 다른 선택의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