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통장 아니고, 텅장입니다 (1) : 잃고 얻은 것〉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과거, 요가 강사로 5년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내 인생 중 가장 열정이 끓어 넘치던 때였다.
회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나는 참 부지런히 배우러 다녔다.
평일에는 센터에서 수업을 하고, 주말이면 교육을 받으러 다니며 스스로 살아 있음을 느꼈다.
배운 것을 수업에 곧장 적용하고 싶은 욕심에 주말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을 정도다.
하지만 사람이 늘 뜨거울 수만은 없었다.
열정이 절정에 치닫자, 어느 순간부터는 가파른 내리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즐겁던 요가가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됐다.
열정은 사그라들었고, 의미 없이 의무적인 수업을 진행하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요가를 가르치는 일이 꼭 즐거울 필요는 없다.
요가강사라는 타이틀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직업이고 수단이니까.
하지만 수업에 쏟는 애정은 곧 질로 이어진다.
많을 땐 서른 명이 넘는 그룹 수업에서 회원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잘못된 동작을 바로잡으며 한 시간 동안 열정을 쏟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반대로, 열정 없이 적당히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무감만으로 수업하는 강사는 필연적으로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회원이 떨어져 나가거나, 내가 지쳐 떨어져 나가거나 둘 중 하나다.
극심한 슬럼프를 앓고 있던 시점에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도 시작되었다.
결국 나는 코로나를 핑계 삼아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5년간의 전력 질주가 마침내 끝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요가를 쉬겠다는 말이지, 일을 쉬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적당한 휴식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지만, 과도한 휴식은 사람을 나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십 대 시절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단 한 번도 일을 쉬어 본 적이 없기에 휴식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엄마는 평생 봉제업을 해오셨다. 봉제업은 보통 2인 1조로 진행된다. 그런데 마치 짜인 시나리오처럼, 엄마와 함께 일하던 아주머니가 마침 그만두셨다.
뜻하지 않게, 나는 당분간 엄마를 도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숱하게 지켜봐 왔기에, 신기한 마음과 함께 엄마의 노고가 느껴졌다. 하지 못하던 일을 해냈을 때 찾아오는 성취감은, 더운 여름날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짜릿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석 달…
어라? 이상하다. 코로나는 잠잠해지기는커녕, 겨울 눈밭에 굴리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서로를 경계하며 던지는 의심 어린 시선들.
잠시만 쉬어가려 했는데, 어느새 복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있었다.
코로나가 중후반으로 접어들자, 멀쩡히 굴러가던 센터들도 앞다투어 문을 닫았다.
막연히 언젠가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멈추지 않는 코로나가 내 계획을 무너뜨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요가를 향한 내 몸과 마음은 서서히 굳어갔다.
“내가 수업을 어떻게 했었더라?”
놓고 살다 보니, 정말 모든 것을 다 놓쳐버린 기분이었다.
어느새 엄마와 함께 일한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코로나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소비심리가 위축되자, 봉제업도 타격을 입었다.
거래처 주문이 끊기면서 강제로 쉬는 날들이 많아졌고, 일한 만큼 버는 구조라 휴식은 독이나 다름없었다.
부모님 이사 비용을 보태드린 시기가 코로나 초기와 겹치며, 내 통장은 이미 잔고 바닥.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했지만, 배움에는 돈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무너진 채 지낼 수 없었다.
매일 밤마다 혼자 수 없이 되뇌었다.
‘나는 성공할 사람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따위의 진부한 말들이었지만, 그 말들이 나를 구덩이에서 끌어올려주는 밧줄이 되어주었다.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않은 채 인생을 한탄해 봤자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무너지는 건 순간이었지만, 일어서는 건 선택이었다.
나는 다시 선택하기로 했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같은 선택을 해야 할 때일지 모른다.
돈도 없고, 변변찮은 직업도 없고, 연애도 말아먹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있고, 살고 싶었고,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 삼십 대가 된 지금도 늘 고민하고 좌절하고, 때론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걷는다.
오늘 하루는 우울했을지라도,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세상의 불행이 모두 내 것인 양 굴지 말고,
세상의 행복이 모두 내 것인 양 굴어보자.
혹시 모르지.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이, 오히려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원천이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