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향기에 취해
나는 평소에 애니메이션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즐겨본다. 다수의 명작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짱구는 못 말려]이다.
어릴 적 동네에 하나씩은 있었던 비디오와 만화책 대여점 가운데 우리 동네를 대표했던 곳은 ‘으뜸과 버금‘이라는 체인점이었다.
엄마, 삼촌의 손을 잡고 대여점에 방문하면, 우중충한 형광등 아래 빼곡히 꽂힌 비디오테이프들 가운데 꼭 짱구 얼굴이 그려진 테이프를 집어 들곤 했다.
지금은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지만, 그 시절에는 비디오나 DVD를 빌려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고전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을 볼 때면 늘 아련한 추억에 잠기곤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 당시의 나를 떠올리게 해주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고전”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고전은 단순하게 “옛날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잃지 않는 기준을 말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치가 퇴색되지 않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주는 것. 그래서 고전은 언제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 생각한다.
나는 남편과 종종 고전 피규어 가게를 찾아다닌다.
그 시절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타임머신 없이도 공짜로 시간 여행을 시켜주니, 늘 고마울 따름이다.
몇 달 전에는 그곳에서 매직키드 마수리 목걸이를 발견했다. 순간, 어릴 적 놀이터에서 목걸이를 가진 친구들끼리 마법놀이를 하던 기억이 번쩍 떠올랐다. 목걸이 하나로도 마냥 즐거웠던 순수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결국 오천 원을 주고 기꺼이 구매했다. 단 돈 오천 원에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면 충분히 값진 지출이었다.
지금은 장식장 속에 고이 모셔두었다. 안 샀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여전히 예쁘다.
예전에는 엄마와 아빠가 옛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오래된 고물일 뿐인데, 새것이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오래된 물건은 단순한 고물이 아니다. 내가 살아온 삶의 증거이며, 그 안에 담긴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품고 있는 보물이라는 점이다.
이제는, 왜 어른들이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버리지 못했는지 알 것 같다.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에서는 ‘20세기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만든 악당이 등장한다.
악당은 자신이 개발한 ‘추억의 냄새’를 퍼뜨리고, 냄새를 맡은 어른들은 과거의 향수에 빠져든다. 결국 어른들은 현재의 삶과 아이들을 뒤로 한채, 자신들이 살아왔던 ‘20세기’로 향한다.
어릴 땐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어른들이 돌아간 20세기는 본인들의 청춘이자 찬란했던 과거 그 자체였다.
책임, 걱정, 고민 따위 없는 즐거웠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어른들. 부모님을 되찾기 위해 짱구와 친구들은 고군분투한다. 결국 아이들의 노력과 가족의 힘으로 어른들은 현실로 돌아오고, 악당의 계획은 무너지고 만다.
철수 : 난 시시하던데, 옛날 추억이 뭐가 그렇게 좋지?
훈이 : 글쎄...
유리 : 좋은지 안 좋은지는 어른이 되어봐야 알 수 있지.
<어른제국의 역습> 中
이 영화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나 코미디를 넘어, ‘과거에 대한 향수와 현재를 살아가는 소중함’을 동시에 일깨워준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어른들과 현재를 지키려는 아이들의 싸움 속에서 ‘추억에 머물고 싶어 하는 마음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함께 발견하게 된다.
옛것의 소중함은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추억의 향기에 잠기는 순간만큼은, 다시 아이가 되어 마음껏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가 고전을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