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과 변함없는 것들에 대하여
5년 전, 직접 고른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 원래 이름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 태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물론 이름을 바꾼다고 이전의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꽤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름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한 사람을 보여주는 삶의 표지라고 생각했다.
맹신하는 건 아니었지만, 기존 이름 중 한 글자가 사주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개명이 하고 싶어졌다. 사실 사는 것이 팍팍스러워 이름이라도 바꾸면 조금 나아질까 하는 작은 기대감도 서려 있었다.
요즘엔 개명 허가를 받는 일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개명 후에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개명이 허가 됐다고 해서 모든 정보가 자동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명 전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초본을 발급받아 직접 정정 신청을 하러 다니거나 팩스로 서류를 보내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당시에 중요한 공공기관부터 각종 홈페이지 회원가입 정보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은 전부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빠뜨린 게 있었다.
얼마 전 남편과 옛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 생활기록부를 조회해 보기로 했다. 요즘에는 간편하게 정부앱으로 조회가 가능하다 보니, 세상 참 좋아졌구나 싶었다. 그런데 ‘정보가 없다’라는 메시지만 뜨고 조회가 되지 않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당시에 미처 생활기록부 이름 정정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정정신청하는 방법은 직접 학교에 방문하거나 교육지원청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 하여, 얼마 후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가기로 했다.
초등학교는 자주 다니는 길목에 위치해 있지만, 늘 스쳐 지났을 뿐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나다니며 보이는 곳은 정문이었는데, 과거 아이들은 거의 후문으로 등하교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후문 앞에 서야 비로소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방문 당일, 지하철에서 내리자 따가운 햇볕 사이로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문득 옛 기억들이 떠올라 추억 여행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학교로 바로 직행하지 않고, 태어나 열 살까지 살았던 동네를 거닐었다. 많이 바뀌었지만, 그대로 있는 건물들과 낯선 듯 익숙한 골목길들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그 시절 나로 돌아갔다. 천천히 걸으며 거리와 건물 사진을 찍었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과거가 될 테니, 부지런히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과거 학교로 가는 길목에는 내가 다녔던 어린이집이 있었다. 아직 건물은 그대로 있었지만, 이제는 공실인 듯했다. 어린이집 건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막내 외삼촌 얼굴이 떠올랐다.
삼촌과는 열 살이 될 때까지 한 집에 살았었는데, 삼촌은 매일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 나를 어린이집에 등하원 시켜 주었다. 돌이켜보면 나와 열다섯 살 차이가 나는 삼촌은 당시 스물한 살에 불과했지만, 그때의 나는 엄청 어른이라고 생각했었다. 서른 살에 바라보니 스물한 살 삼촌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다른 아이들이 아빠와 결혼한다고 할 때 나는 삼촌이랑 결혼한다고 할 정도였으니, 삼촌을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어린이집 하원 때마다 삼촌을 졸라서 필수 코스로 들렸던 분식집 자리에는 원단 창고가 들어서 있었다. 모습은 변했지만 기억만큼은 또렷한 게 신기했다.
기억을 따라 골목길을 걸었다. 이어지는 길마다 무언가 찾는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에 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 한 뒤 제 몸보다 더 큰 책가방을 매고, 혼자 갈 수 있다며 홀로 등굣길에 올랐던 내가 일렁였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낯설면서도 익숙한 골목골목을 지나자 신기하게도 학교가 나타났다. 22년 전 집 앞마당처럼 누비던 동네였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게 변했지만, 기억만큼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요즘엔 예전처럼 학교에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많았고, 아이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출입 전에 경비분께 출입 목적과 방문자 기록을 작성해야 출입이 가능하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 졸업생인데, 생활기록부 정정 할 부분이 있어서 행정실 좀 가려고요. “
참 웃기는 것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마치 까다로운 입국 심사관을 만난 것처럼 등줄기에서 땀이 주룩 흘러내렸다는 점이다. 다행히 경비분께서는 웃으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고,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국’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를 마주하는 일은 왜 이렇게 두근거리고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학교는 달라진 듯하면서도 그대로였다. 급식실, 맞은편에 길게 이어진 복도에는 행정실, 교무실 등이 자리하고, 그 끝에는 체육관이 있었다. 과거보다 더 아기자기하게 단장되어 초등학교다움이 짙어진 것 같았다.
학생기록부 성명 정정은 생각보다 굉장히 간단했다. 초본, 신분증, 행정실에서 요구하는 신청서만 작성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신청서를 작성하는 동안에 체육수업을 하고 있는 건지, 체육관 문을 넘어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렁차고 힘 있는 그 나이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왜인지 흐뭇하게 다가왔다.
신청을 완료하고 행정실을 나서 아주 느릿한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급식실 옆 운동장으로 통하는 문을 조심스레 나가 보니, 높고 푸른 하늘과 학교의 풍경이 어우러지며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학교가 휑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재학생 수가 많지 않아서인 듯했다. 궁금해져 알아보니 160여 명이 전부였다. 저출산의 심각성을 느끼며, 나의 모교도 언젠가 폐교 수순을 밟는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외부인의 신분인지라 살짝 눈치가 보여 추억 여행은 그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 학교 다니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아침 등교마다 표정은 죽상이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느라 바빴다.
좋았던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훨씬 많다. 편식이 심했던 탓에 식판을 깨끗이 비우지 못하면 다 먹을 때까지 집에 보내주지 않았고, 시험지에 비가 내린다고 검지를 세운 주먹으로 “맹꽁이 녀석!”이라며 수차례 머리를 쥐어 박히기도 했다.
어느 날은 급식에 대하 구이가 나왔다. 해산물을 먹지 못했던 나는, 대하 두 마리와 눈싸움을 하며 교실에 홀로 남겨졌다. 다 먹을 때까지 집에 보내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머리와 꼬리, 껍질도 까지 않은 대하 두 마리를 물과 함께 꿀꺽 삼켜내야 했다. 먹어본 적도 없고, 징그러워서 손도 대기 싫었다.
작은 몸에 씹지도 않은 대하 두 마리가 통째로 들어갔으니, 이틀 동안 가슴이 찌릿거리는 통증을 앓아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떼어내지 않은 꼬리 끝의 날카로운 부분이 속을 찌르며 자극했던 것 같다. 부모님께 말도 못 하고 앓다가 이틀 만에 증상이 사라졌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기억, 지금 생각하면 참 웃프다.
그럼에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들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기억이 흐릿해질수록 아픈 기억은 퇴색되고 좋은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어쩌면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기억을 정화하고 미화시키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이름은 바뀌었지만,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도 나였고, 지금도 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추억에 살아간다는 말이 요즘 참 공감되는 말 중 하나다.
어릴 적 살았던 그 동네가 좋은 동네도 아니었고, 좋은 집도 아니었지만 나름의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 저 편에 간직되어 있었나 보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 사이로 숨어 있던 기억들이 넘실거릴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학교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하나씩 넘겨보며, 언젠가 과거가 될 지금을 단단히 살아내보자는 다짐을 했다. 언젠가 반드시, 지금의 나를 그리워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