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by 김열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은 늘 이렇게 끝났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단순하고 명쾌한 문장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만큼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인생이 동화 속 이야기처럼 단순하게 흘러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벌써 결혼 2년 차인 우리 부부는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혼인신고만 한 채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처음에는 과감하게 결혼식 생략도 생각했었지만, 둘 다 외동아들, 딸인지라 부모님들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올해 결혼식을 올리기로 마음먹고 하나씩 준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4월, 우리는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웨딩 스냅 촬영을 위해 도착한 제주도에서 만난 헬퍼 실장님은 사십 대 후반 여성분이었다. 처음엔 동안 외모 덕분에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분이 건넨 한마디는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두 분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희는 올해 서른이에요. “

“서른, 좋겠다. 정말 부럽다.”


이십 대 내내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레퍼토리다.

어린 사람을 보면 으레 하는 말.

“젊어서 좋겠다. 좋을 때야. “ 같은 종류의 말들.


사실 스물아홉의 나와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그저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꽤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때 실장님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십 대 때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죠. 시간이 정말 안 갔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사십 대가 되니까,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일 년은 더 빨리 흘러가더라고요.”


남편과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미 우리의 삶도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장님이 이어 말했다.


“돌이켜보면 이십 대는 돈이 없었고, 삼십 대는 돈은 있는데 심적 여유가 없었고, 사십 대가 되니 돈도, 심적 여유도 생겼는데 이제는 몸이 예전만큼 따라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인생이 참 웨딩 촬영 같다고 느껴져요.


첫 촬영 시작 때는 어색하고 힘들지만 한 시간, 두 시간 흘러갈수록 신랑 신부님들이 모델로서 여유가 생기잖아요. 그렇게 촬영에 익숙해지고, 아까 보다 더 노련하게 포즈도 취하고 웃을 수 있을 것 같을 때, 촬영은 끝이나 버려요. 인생이랑 참 비슷한 것 같아요.”


찰떡같은 비유가 가슴속에 콕콕 날아와 박혔다.

실장님의 말씀은 인생의 요약본이었다.

실제로 낯설고 부끄럽던 카메라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촬영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웨딩 촬영하러 갔다가 남은 인생을 예고당한 듯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남편과 나도 무언가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이미 젊지 않을 것이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상대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의 가장 예쁘고 멋있었던 젊은 날을 회상하겠지 싶었다.


촬영을 하는 동안 제주 바닷바람에 머리칼이 사정없이 휘날렸지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관자놀이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매일 보던 얼굴이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서로의 눈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그 순간 남편의 얼굴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생겼구나.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인생을 남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일기를 쓰거나, 캘린더에 일정을 기록하고, 늘 어디 가던 그날의 사진을 빠뜨리지 않는다.

나이 들어버린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모습과 목소리를 남기는 일에 정성을 쏟는다.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했다.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기록 중 하나인 것이다.


핸드폰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지만, 나는 주기적으로 구식처럼 실물 사진을 인화한다. 작은 방 책상 아래에는 묵직한 사진 박스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사진박스들은 단순한 보관함이 아니다. 먼 미래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문득 그리워질 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나의 작은 꿈이자, 세상이다.


지금 우리의 인생은 어디쯤 흘러가는 중일까?


인생의 끝이 설령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동화 속 해피 엔딩이 아니더라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 정도의 결말을 맺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