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짐승은 가슴을 부풀려 적을 위협한다

작지만 강하게 살아남기

by 김열매

​​결혼 전 본가에 살 때, 나는 괜히 가슴을 한껏 내밀고 거실을 당당히 걸었다. 어디선가, 뱁새가 위협을 느끼면 가슴을 부풀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푸흡, 딸 뭐 해?”

“작은 짐승일수록 가슴을 부풀려 적을 위협하는 거야.”

내 말에 엄마는 설거지를 잠시 멈추고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다 큰 딸이 작은 짐승 흉내를 내고 있으니 우스울 만도 했다.

사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작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2.7kg으로 태어난 작은 아기를 크게 키우려, 엄마는 분유를 열심히 먹였다고 한다. 덕분에 어릴 적 사진을 보면 팔과 다리에 통통한 소시지가 가득했다. 겹겹이 붙은 살 사이로 체온이 높은 나는 땀을 뻘뻘 흘렸고, 저녁마다 사이사이 끼는 검은 때를 한 겹씩 벌려 닦아주셨다고 한다. 지난날을 회상하던 엄마는 “참 귀여웠는데.”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엄마의 기대와 달리 성장은 더뎠다. 초등학생 때 내 키 번호는 늘 1번이었다. 중학교 입학 당시 키가 자랄 것을 염두에 두고 크게 샀던 교복은 결국 마지막까지 포대자루였다.

그렇게 최종 진화는 151cm에서 멈추었다.

주변 지인들은 종종 나를 ‘치와와’라고 부른다. 작은 체구와 앙칼진 성격이 치와와를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아르르- 거리며 세상을 살았다. 몸집이 작아도 자신의 세상을 지키는 일에는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노력으로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은 장점으로 끌어안는다. 이렇게 가슴을 부풀려 애써 강한 척했던 내 모습은, 결국 ‘자기 사랑’과 맞닿아 있었다.​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타인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전할 수 있다.

과거의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렸다. 자존감, 자신감, 당당함 따위의 단어들로 애써 포장했지만, 사실 내면은 마치 외나무 줄을 타고 있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사람 만나는 일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외출하는 일도 적었지만, 어쩌다 친구와 술 한잔하고 귀가하는 길에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공허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꼈다. 친구는 아무 죄가 없었다. 문제는 오롯이 내 안에 존재했다.

문제의 원인이 결국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뿌리는 다름 아닌 ‘돈’이었다.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 탓에 나는 돈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또래보다 훨씬 많이 모아둔 저축이 내 유일한 자랑이자, 당당함의 근거였다. 하지만 그 위에 세운 자존감은 허약했고, 작은 흔들림에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유일한 자랑거리가 사라지자, 맥을 추지 못했다.

하지만 무너져 본 덕분에 오히려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돈이 아닌 자신을 자랑거리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진 것을 잃어도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단단한 집을 짓는 일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변화하며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작은 짐승처럼 가슴을 부풀리지 않는다. 내 안의 흔들림을 인정하고, 약한 나도, 불완전한 나도 그대로 끌어안는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살아가는 가장 단단한 힘임을 알고 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