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것 같다는 말

올해의 끝에서 두 엄마에게 배운 삶의 무게

by 김열매

하루가 지나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은 한 달, 한 달은 어느새 일 년이 된다.


시간의 속도는 언제나 같을 텐데, 이상하게 스무 살을 지나며 삶의 흐름이 점점 더 빨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십 대는 어느 순간 저물어 있었다. 돌아보면 그저 순식간이었다.


삼십 대도 분명 젊은 나이다. 누군가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부러운 시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십 대가 가진 푸르름은 지나고 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찰나의 순간들이다.


문득 시간이 흐르고서야 그 시절의 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걸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몰랐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렇게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준비를 차곡차곡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올해가 저물어간다.

사계절이 분명히 지나갔고, 나는 그 안에서 울고 웃으며 치열하게 살아냈음에도 막상 돌아보면 손에 잡히는 것이 많지 않다. 삽십대가 되니 일 년이 마치 한 달처럼 지나가버린다. 마음의 속도가 시간의 속도를 점점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올해는 유난히 무게감이 짙은 한 해였다.

분명 기쁜 일도 많았지만, 그것보다 씁쓸한 깨달음과 생각들이 더 머릿속에 맴돈다.


주민등록증을 들고 편의점에 당당히 들어가 술을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술 집 문 턱을 당당히 넘을 때, 그때는 그것이 성인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잠깐 있었다.

하지만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이 선택과 책임의 연속이며 삶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받아들이고 깨닫는 과정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잊히지 않는 것은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것 같아.”


처음에는 그저 스쳐가는 말이겠거니 하며 흘려 들었지만, 두 분의 목소리는 묘하게 닮아 있었다.

평생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이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소모되고, 조금씩 내려놓고, 조금씩 사라져 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 보게 된 순간이었다.


세월이 지나면 남은 시간과 지나온 시간을 저울처럼 재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 나이에 가까워진 엄마들의 말에는 짙은 인생과 현실이 담겨 있었다.

치열하게 쌓아 올리던 시절이 지나고, 쌓아는 것보다 비워지는 것이 많아지는 순간이 올 때 우리는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얼마 전부터 자아성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글로 풀어내다 보니 마음속에서 몰아치던 태풍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잘 살아가는 일의 첫걸음은 아마도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올해를 돌아보면 ‘살아가는 날‘보다 ‘버티어가는 날’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버티어 살아가는 삶도 결국엔 살아낸 삶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며 한 계절마다 하나씩 쌓아가고, 언젠가는 한 계절에 하나씩 내려놓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걸 비워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 그래도 참 잘 살았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