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지켜낸 12년의 기록
나는 열다섯 살에 자퇴를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자퇴라기보다 재적이 조금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홈스쿨링을 하겠다는 거창한 결심이 있었건 것도 아니었고, 학교폭력을 당했다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학교에 가는 일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이유라고 할 것도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할 때는 거주지 주소를 기준으로 학교가 배정된다. 그 과정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들어간 학교는 나와 전혀 맞지 않는 곳이었다.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들은 모두 A여자 중학교로 배정되었지만, 나는 소위 뺑뺑이에 걸려 홀로 멀리 떨어진 B여자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홀로 낙오된 나는 참담했고 엄마는 학교에 항의까지 했다.
돌아온 담임 선생님의 말은 이랬다.
”딱 두 명 보내기로 되어 있었는데... 유감입니다 “
그 말이 어찌나 덤덤하던지.
정작 유감인 건 나였다.
십 대 시절에는 친구가 무엇보다 중요한 나이다.
늘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들과 하루아침에 떨어져 한 번도 본 적 없는 학교에 혼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맞은 첫 등교 날.
교실에는 이미 같은 초등학교 출신끼리 큰 무리 세 개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나는 교실 구석에서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왕따를 당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친구라고 부를 만큼 가까운 존재도 없었다. 그저 눈에 띄지 않게 흘러가는 존재감 없는 학생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유독 억압적인 환경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자유분방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납득되지 않는 규율이나 억압은 쉽게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때도 이유 없는 등교 거부로 엄마는 늘 마음을 졸였다. 그 걱정은 홀로 먼 중학교에 배정되며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우울증까지 겹친 나의 등교 거부는 극한으로 치닫는 파국을 맞이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반과 담임 선생님이 배정되었다. 등교 거부로 집에 틀어박혀 있던 나 때문에 엄마는 선생님과 면담을 가졌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선생님은 차분한 어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본인의 아들도 우울증으로 중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 학교가 꼭 정답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 면담 이후 엄마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나는 학교에서 재적 처리가 되었고 합법적으로 등교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 밖 청소년이 되었다.
막상 재적이 되고 나니,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불안이 몰려왔다.
지금 내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에 멈춰있었고, 냉정하게 말하면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굴러갈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자유를 선택했다면,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피부로 다가왔다.
그래서 무작정 검정고시 교재를 사들고 인터넷 강의를 보며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결국 열여섯 살 4월에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열일곱 살 4월에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나는 이미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갖게 된 셈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편에는 큰 여유가 생겼다.
요리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그 여유를 틈타 요리학원에 다니며 자격증을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열여덟 살에 대학에 입학하며 자연스레 또래보다 두 걸음 빠르게 앞서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삼십 대가 되어보니, 앞서 나간 속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내가 걸어가는 속도에 맞춰 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일이었다.
열여덟부터 서른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러 번 직업을 바꿨고, 좌절과 회복을 반복하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 왔다. 남들 보기에 번듯한 학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화려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지만 그 모든 경험과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과의 조화, 나만의 걸음을 유지하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인생이란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나와의 경쟁이며 나와의 동행이다.
누군가보다 빠르게 나아가는 것보다 내가 걸어갈 수 있는 속도로 꾸준히 걷는 것이 더 의미 있다.
앞서 나간다는 생각에 우쭐하지 않고, 뒤처진다고 자책하지 않으며 그저 나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삼십 대가 되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