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매일 저녁 메뉴로 얼마나 고민하셨을지 자랄 때는 몰랐습니다. 퇴사 후 주부의 삶을 경험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수행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고민은 '매일의 저녁 메뉴'입니다. 밀키트, 배달 음식, 포장 등 먹고자하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건강하게 먹기'를 실천하기 위해서 입니다.
메뉴 구성에 있어서 영양소 균형에 가장 힘 쓰는 편입니다. 달걀은 영양가가 높으면서 비교적 저렴하고 조리법이 많아서 선호하는 재료입니다. 단백질 보충과 맛이 좋은 이유로 두부도 자주 사먹습니다. 그 외에 섬유질을 보충하도록 쌈채소를 먹는 편인데, 요즘엔 택배로도 배달이 가능해서 자주 활용합니다.
바깥 음식이 모두 나쁘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집밥이 주는 건강함에는 분명 바깥 음식 이상의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을 볼 때도 최대한 좋은 재료를 구매하고, 맛보다는 영양적 측면에서 많이 고민합니다. 특히 '간'을 슴슴하게 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나트륨은 심혈관 질환과 위에 부담을 주기 때문입니다.
'먹기 위해 사는 인간'과 '살기 위해 먹는 인간'이 있다는데, 사실 저는 후자에 가까운 편입니다. 식욕이 크게 없고 하루에 3끼나 챙겨 먹어야 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식욕이 없다고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여러 연구를 통해 하루 두 끼니 혹은 한 끼니만을 간헐적으로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째서인지 제 배꼽시계는 꾸준히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챙겨달라고 아우성이었지요. 그러니 식욕은 없는데 끼니는 챙겨야 하는 귀찮은 상황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직장생활 중 식사는 제게 그저 '떼우는 것'이었습니다. 안그래도 귀찮은데 직장 생활로 인해 에너지가 고갈되어 더더욱 의지가 없었습니다. 오늘 먹은 아침, 점심, 저녁 식사의 균형과 영양학적 측면보다는 그때 그때 닥치는대로 배고픔을 해소하는 것이 익숙했습니다.
주로 서랍 가득한 간식거리가 그 역할을 수행했는데 사무실 서랍에 보관하면서 먹을 만한 간식거리 중 건강하고 몸에 좋은 식품은 드물었습니다. 과자, 초콜릿, 사탕 등 현란하고 자극적이지만 몸에 좋지 않은 종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스트레스 해소를 명목으로 퇴근 후 맥주로 저녁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술집에 가면 맥주만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또 문제인데, 자연스레 고칼로리의 자극적인 안주와 술을 마시게 됩니다. 그 탓에 직장인들의 고질병이라는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을 언제나 달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하루 단위, 그리고 일주일 단위로 식단을 보고 큰 그림을 보려애씁니다. 예를 들어, 아침과 점심에 빵이나 면류의 밀가루 음식을 먹었다면 저녁으로는 꼭 잡곡밥과 같이 덜 정제된 탄수화물을 섭취하려고 합니다. 주말에 외식이 잦았다면 주중엔 집밥의 비율을 올립니다. 간식도 당을 생각해가며 먹습니다.
가정 내 식사에 대한 주도권을 잡다보니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고민한 식단을 믿고 묵묵히 먹어주는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조금 더 면밀하고 냉정하고 효율적으로 식단을 짜고 한끼를 책임집니다.
탄수화물만 비율이 너무 높은 건 아닌지? 단백질은 적절하게 들어있는지? 단백질이 지나치게 가공육인지? 동물성 단백질만 섭취하는 것은 아닌지? 섬유질과 기타 영양소는 들어 있는지? 나트륨이 많지는 않은지? 등등.
좋은 식사를 챙기는데서 오는 아웃풋은 꽤 눈에 띄는 편입니다.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 사라진 것 뿐만 아니라 피부도 좋아집니다. '얼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보조제를 먹지 않아도 화장실에 갈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보조제를 먹지 않으면 아예 화장실을 못 가는 심각한 변비였는데, 지금은 쾌변까진 아니더라도 신호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체중 조절이 됩니다. 과하게 찌거나 빠지는 일 없이 적정 체중으로 살고 있습니다. 심각했던 저혈압도 조금씩 회복되어 정상범위에 들어왔습니다.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일구고 있습니다.
아직 가야될 길이 멀고 험난하지만서도 '집밥 마스터'가 되기 위한 노력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습니다. 평소 식사를 귀찮아하던 사람이라 하루하루 식단을 고민하는 게 마냥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돌본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며 이겨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와 평생을 약속한 사람의 끼니까지 생각하는 마음이 생겨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귀찮고 번거로울 때는 여전히 간편하게 떼우기도 하지만 그 비율이 많이 줄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직장을 그만두고 제 내면의 에너지가 방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추구하고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퇴사라는 쉼표를 계기로 '건강하게 먹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뭐든 먹으면 수명은 지속 되겠지만 결국 나이가 들면서 삐그덕 거릴 것이 분명합니다.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적 요인에 의해 병이 올 수도 있겠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먹는 것'입니다. 식이습관은 건강과 떼려야 뗼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나이 들면 가장 흔하다는 혈압이나 당뇨도 모두 식습관 조절부터가 치료의 시작입니다.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건강하게 먹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건강한 식단에 쓸 에너지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살면서 마음껏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먹는 것조차 원하는 방향으로 건강하게 이끌지 못한다면 더 많은 것에서 좌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추후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지금 들인 습관을 잘 기억하고 유지하면서 '잘 먹는 인생'을 살아볼까 합니다. 나를 위해 잘 먹는 것부터 실천하기! 건강한 인생을 위해 해볼만한 가장 쉬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