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위한 18개의 노트
1부 - 경계에 머무는 사람
1.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2. 확신이 없는 사람의 세계
3. 나는 왜 자꾸 사라지려 하는가
4.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사이에서
5.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만든다
6. 흔적은 때로 말보다 무겁다
Interlude - 머물렀던 자리로부터
1.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나는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잠시 망설였다. 아직 나는 예술가가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아직 예술가조차 아니다. 프랑스의 예술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일 뿐이고, 내가 정말 예술가가 될 수 있을지, 혹은 진짜로 되고 싶은 건지조차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말이 자꾸 입안에서 맴돈다.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어쩌면 나는 그 경계 어딘가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되지 않으려고 버티면서도, 또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불안해지는, 애매하게 솔직한 사람.
그런 고민을 품은 채, 종종 나는 내 안의 무언가를 따라 작업을 시작한다. 그건 뚜렷한 형태도 없고, 이름으로 부를 수조차 없는 감정이다. 어쩌면 그것은 결핍에 가까운 무언가다. 불안이라 부르기엔 너무 가볍고, 고독이라 부르기엔 너무 낭만적이다. 그저 채워지지 않는 감정, 설명할 수 없는 응시,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놓쳐버린 나 자신.
나는 그 흐릿한 결을 따라간다. 말보다 더 오래 머무는 침묵의 조각들, 그것들이 내 안을 조용히 파고들어 머리와 가슴에 흔적을 남긴다. 어쩌면 나는, 그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내 모습을 뒤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사용하는 매체를 통해, 아직 표현되지 못한 무언가를 흘려보낸다. 말로는 도달할 수 없는 감정, 형태를 갖기 전에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어떤 감각들. 그것이 단순히 작업인지, 예술인지, 아니면 그냥 나의 흔적인지 나조차 잘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것을 '예술'이라 불렀고, 나는 그 단어 앞에서 자꾸 걸음을 멈춘다. 그 이름이 붙는 순간, 그 말 안에 나를 가두게 될까 봐. 혹은, 그 무게에 내가 미쳐 닿지 못할까 봐. 그것이 진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이름 붙이기에 익숙한 관성 때문인지, 그 경계는 늘 모호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만든 것이 ‘예술’이라 불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 자랑스럽기도 했다. 부끄러웠던 건, 내가 만든 게 감히 예술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 개인적이고, 너무 불완전하며, 어쩌면 나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의 조각들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자랑스러웠던 건, 내가 어쨌든 세상에 무언가를 만들어 남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머무는 장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 생각은 분명 나를 위로했고, 아주 작지만 분명한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확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늘 흔들리고 무너지고, 어떻게든 부서진 조각을 이어 하루를 버텨낸다. 그 속에서 무언가 나온다면, 그건 작품이라기보다 사라지지 않기 위한 흔적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무엇이 예술인지 쉽게 정의하지 않기 위해, ‘작가’라는 이름으로 나를 가두지 않기 위해, 내가 만든 것들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 위해.
이 글은 그 이야기의 시작이다. 앞으로 나는 내가 왜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지, 왜 결핍과 흔적, 사라짐과 응시 같은 감정들이 자꾸만 내 작업에 나타나는지를 천천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 말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잠시 이곳에 붙잡아두고 싶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침묵 속에서 나와 비슷한 무게를 느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