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위한 18개의 노트
1부 - 경계에 머무는 사람
1.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2. 확신이 없는 사람의 세계
3. 나는 왜 자꾸 사라지려 하는가
4.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사이에서
5.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만든다
6. 흔적은 때로 말보다 무겁다
Interlude - 머물렀던 자리로부터
2부 - 조용한 무게들
7. 결핍이라는 출발선
8. 말보다 오래 남는 것들에 대해
9.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10. 응시와 침묵 사이의 나
11. 존재는 때로 아주 작고 조용하게 지나간다
12. 무응답이라는 대화
Interlude - 조용한 무게들을 향해
9.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어떤 감정은 끝내 이름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종종 그런 감정들에 머문다.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 흐릿한 것들.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행복도 아니고 불행도 아니며, 위로도 아니고 상처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미움도 아닌. 어쩌면 그 중간 어디쯤. 혹은 전혀 다른 결의 감정. 한쪽으로는 분류될 수 없지만, 피부 아래 깊숙이 스며드는 감정의 잔여.
나는 그런 감정들을 자주 느낀다. 정확히 무엇이라 말할 순 없지만, 가슴 어딘가가 조용히 일렁이는 느낌. 마치 설명되지 않은 감정이 스며들고, 어떤 눈빛이 마음 한켠을 스치고, 감정의 가장자리가 나를 흔드는 순간들.
예전엔 그런 감정들이 불편했다. 정의할 수 없으니 혼란스러웠고, 말로 옮길 수 없으니 쓸모없게 느껴졌다. 모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고, 그렇게 나는 자주, 그런 감정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밀어내도 다시 돌아오는 감정들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이름 붙이지 못해도 괜찮고, 어디에도 정확히 속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씩 스스로를 설득하게 되었다. 흐릿하고 불완전한 감정일수록 오히려 더 진실하게 나를 드러낸다는 걸 나는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주 그 이름 없는 감정의 결을 따라 작업한다. 단어보다 이미지, 설명보다 여백, 무언가를 말하기보다 잠시 머무는 장면을 택한다. 그 감정은 설명되지 않지만, 빛의 흐름, 몸짓의 멈춤, 시간의 리듬 속에서 어쩌면 더 분명하게 존재한다.
나는 여전히 망설인다. 이 감정을 꺼내도 괜찮을지, 누군가 이해해줄 수 있을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감정들을 놓고 싶지 않다. 이름 붙이지 못해도, 그 감정은 분명히 존재했다. 내가 분명히 느꼈고, 내 안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렀던 것.
나는 이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도 나를 이루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발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