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lude – 머물렀던 자리로부터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위한 18개의 노트
1부 - 경계에 머무는 사람
1.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2. 확신이 없는 사람의 세계
3. 나는 왜 자꾸 사라지려 하는가
4.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사이에서
5.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만든다
6. 흔적은 때로 말보다 무겁다
Interlude - 머물렀던 자리로부터
나는 지금까지 여섯 개의 노트를 천천히 꺼내 놓았다. 어떤 것들은 너무 사적인 감정들이었고, 어떤 것들은 끝내 말로 다 하지 못한 채 남겨진 조각들이었다. 그 조각들은 모두 흐릿하고 조용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안에 내 마음의 가장 진한 흔적들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엔 많이 망설였고,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낯선 시선 앞에 놓일까 봐, 너무 사적인 감정이 그대로 드러날까 봐, 내가 쓴 글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일까 봐. 그 생각만으로도 부끄러움과 불안이 동시에 밀려왔고, 그걸 감추려다 더 숨고 싶어진 날도 있었다.
나는 아직, 무엇을 말해야 할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무엇을 아직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말 대신 조용히 응시하고, 때로는 설명 대신 여백을 남긴다.
하지만 쓰고, 꺼내고, 다시 들여다보는 사이 나는 내가 어떤 장면에서 자주 멈추는 사람인지, 어떤 감정 앞에서 조용히 흔들리는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확신이 없는 사람이고, 사라지지 않기 위해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면서도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불완전하고, 그저 살아가는 한 방식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어쩌면 이 1부는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마음’에 관한 기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가라 불리기엔 아직 낯설고, 완성된 무언가를 내놓기엔 아직 머뭇거리는, 그 애매한 시간의 가장자리에서 쓰인 글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머뭇거림 속에도 진심이 있다는 걸. 결론 없이도, 말이 다 닿지 않아도, 조용히 머무는 감정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
물론, 지금도 나는 많은 것들을 감추고, 조심스럽게 써내려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쓰고 싶다. 나 자신에게도 낯선 이 감정들을, 한 줄씩, 한 조각씩, 꺼내어 보이고 싶다.
그래서 이제 나는 그 조용한 무게들을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려 한다. 말보다 느린 감정들,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응시와 침묵, 그 무게들을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