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흔적은 때로 말보다 무겁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위한 18개의 노트
1부 - 경계에 머무는 사람
1.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2. 확신이 없는 사람의 세계
3. 나는 왜 자꾸 사라지려 하는가
4.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사이에서
5.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만든다
6. 흔적은 때로 말보다 무겁다
Interlude - 머물렀던 자리로부터
6. 흔적은 때로 말보다 무겁다
나는 자주 말보다 다른 것들을 더 오래 기억한다. 누군가가 남긴 말보다 그 말이 전해지던 분위기, 그때의 표정, 혹은 그 사람이 자리를 떠난 뒤에 남은 공기의 결 같은 것. 그런 조용한 흔적들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오래 머무는 순간이 있다.
작업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 단어로 닿지 않는 거리. 그 경계에 걸쳐 있는 어떤 장면들. 나는 그런 것들을 남기고 싶다.
모든 감정이 말이 되는 건 아니다. 어떤 감정은 단어에 닿기 전에 사라지고, 어떤 감정은 끝내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감정들이 머무는 자리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말과 말 사이, 단어가 놓치고 가는 여백, 설명되지 않는 침묵. 그 사이에 남는 잔상 같은 것.
나는 그런 장면을 남기고 싶다. 말보다 느린 이미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감지되는 무언가. 그 경계에 걸쳐 있는 장면이란, 말로 설명될 수 있는 지점과 설명되지 못한 감정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어떤 순간이다. 어쩌면 막 말을 꺼내려는 입술, 멈칫한 시선, 끝내 닫히지 않는 문틈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장면들이 말보다 더 오래 남기를 바란다. 멈춘 듯 보이지만 어딘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프레임. 확실히 닫히지 못한 장면들. 그런 것들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감정을 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느냐고, 왜 말을 아끼느냐고, 왜 끝까지 설명하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여백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표현일 때가 많았다. 침묵, 공백, 머뭇거림.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감정의 또 다른 형태였다.
내 작업은 그런 여백 속에서 태어난다. 아직 닿지 못한 말들, 끝내 마주하지 못한 마음들, 어디에도 다다르지 못한 시선들. 그 모든 것이, 말로는 닿지 못한 자리에 가만히 흔적으로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