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만든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위한 18개의 노트
1부 - 경계에 머무는 사람
1.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2. 확신이 없는 사람의 세계
3. 나는 왜 자꾸 사라지려 하는가
4.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사이에서
5.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만든다
6. 흔적은 때로 말보다 무겁다
Interlude - 머물렀던 자리로부터
5.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만든다
나는 왜 작업을 계속하게 될까...
그건 단순히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감정을 흘려보내고 싶었다. 말로 꺼내기 어려운 어떤 것들, 형태를 갖기 전에 사라져버릴 감정들을 어디에라도 잠시 붙잡아두고 싶었다.
그런데 작업을 계속하면서 나는 점점 다른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감정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따라오고, 나를 감싸고,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것을...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단지 표현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조용히 자각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내가 쓴 문장과, 내가 남긴 흔적 속에서 나는 나를 거울처럼 마주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를 드러내는 일이 부끄러웠다. 너무 사적인 감정이 그대로 보일까 봐... 너무 솔직한 흔적이 낯선 시선에 닿을까 봐... 혹은 내 안의 비밀이 드러난 것처럼, 벌거벗은 채 무언가 앞에 서 있는 기분처럼...
하지만 그런 불편함 속에서도, 나는 점점 내가 어떤 장면 앞에 오래 머무는지... 어떤 단어를 망설이다 적고 지우는지를 조금씩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것에 쉽게 상처받는지... 또 무엇을 바라보며 마음이 조용히 흔들리는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을 끝내 놓지 못하는 사람인지...
또 어떤 순간에는 아무것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조차 나를 설명하는 한 조각이라는 걸... 그제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작업을 통해 나를 점점 더 천천히 알아가고 있었다. 조급하지 않게, 확신 없는 채로도 계속 이어나가는 연습...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단지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나를 조용히 바꾸어가는 일이기도 했다. 그건 표현이라기보다, 형성에 가까운 일...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리를 찾아가는 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조금씩 닿고 있었다. 때로는 너무 솔직해서 불안했고, 때로는 너무 부족해서 감추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것이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조용한 흔적이 되었고... 그 흔적들이... 조금은 서툴게... 그러나 진심으로 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계속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였고, 그게 결국,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만든다’는 말의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