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꼬이지 않게 평소에 인성 관리 하자<파리대왕>

윌리엄 골딩_파리대왕

by 해찌
출처 : 교보문고


눈 떠보니 웬걸? 어른도 없고 학교도 없는 무인도라고?

등굣길에 종종 상상하던 상황이었고,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출근길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가끔 생각한다.


아 물론, <파리대왕>처럼 타인과 피비린내 나는 상황은 사절이니 친구던 가족이던 다 빼고 나 혼자.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살던 지방은 지금으로 말하면 ‘학폭’이라 하고, 그 시절에는 ‘철부지들의 장난’쯤으로 치부되는 행위가 꽤 심한 곳이었다. 입학을 하면 소위 ‘잘나가는 언니’들이 마음에 드는 신입생들을 찍어 1:1로 자매를 맺고, 이것저것(?)을 가르쳐 줬다. (뭐 대략 불량스러운 것들…) 문제는 여기서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신입생들끼리 무리를 지어 다니고 그 무리에서 인정받기 위에 경쟁적으로 동급생들을 괴롭혔다. 학년 말로 갈수록 이는 상식선을 벗어나는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제3 자도 이런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기에 누구 하나 심각성을 알지 못했을 정도.

<파리대왕>은 그런 의미에서 참 불편한 소설이다.

소설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드러내는 야만성이, 동급생을 괴롭힌 가해자, 또, 얽히기 싫어 그것들을 방관한 나 자신에 오버랩되어 불쑥불쑥 역겨움이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다. 그나마 <파리대왕>은 질서도 없는 태초같은 외딴섬에서 발생한 일이라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 나의 경우에는 문명사회에서 이 무슨 부끄러운 일을..!

<파리대왕>의 저자인 윌리엄 골딩은 미국 출판사와의 인터뷰에 책의 주제에 대한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고 한다.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의 결함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다. 사회의 형태는 개인의 윤리적 성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지 외관상 아무리 논리적이고 훌륭하다 하더라도 정치체제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모럴이다.”

즉, 사회를 이루는 인간의 본성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드는 사회도 결함이 있다는 것.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것과 나치에 의한 대규모 살상을 모두 경험한 작가로서는 <파리대왕>을 통해 인간 본성을 고발함과 동시에 반성과 성찰을 하자는 것이 진짜 주제이고 목적이 아닐까 싶다. 나야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을 직접 겪지 못해 속 편한 소리일 수 있겠지만, 작가가 묘사한 인간의 본연적인 모습이(거의 성악설에 가까운) 야만성이라는 것은 부정하고 싶다. 소설의 초반 잭이 맷돼지의 목을 찌르는 것을 주춤한 것은 야만성이 아직 표출 되지 않은 것이 아닌 극한의 상황에서 발휘된 본능적인 선함이 제어장치가 된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뭐, 결론적으로 본성이니 뭐니 해도 매 순간은 선택의 문제이지 않은가?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옳은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니 잭 일행과 같이 제어장치를 스스로 망가뜨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틈틈이 파리대왕도 읽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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