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_모순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나 김혜진.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 이렇게 일만 하면서 살면 안 돼! 꼭 그러면 안 돼!”
업무로 너무 힘든 한 주를 보낸지라 나도 안진진 처럼 격렬한 외침을 토해봤다. 안진진보다 더 강조하기 위해 내 이름까지 넣어서.
현재 대법원에서 허용하는 인명용 한자는 약 8,142자가량이 있다. 이 중에서 이름에 사용하면 좋지 않다는 ‘불용 문자’는 약 128자이다.
그중 하나가 안진(眞)진(眞) 과 김혜진(眞)에 쓰인 참진(眞)이다.
이 참진이 이름에 쓰일 경우 ‘이성 문제가 있고 허세가 심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것을 안다면 (물론 나는 예외다) 왠지 중이병 같은 말투에 두 남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안진진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지..
자, 각설하고!
모순은 인물들을 세워 대립각을 이룬다. 엄마와 이모가 그러하고, 아버지와 이모부, 김장우와 나영규, 안진진과 주리가 그러하다.
뽀끌레에서 머리를 볶는 억척스러운 엄마와 멋진 크리스털 병을 선물할 줄 아는 우아한 이모.
그 둘은 같은 얼굴의 일란성 쌍둥이로 4월 1일 만우절에 같은 날 태어나고 같은 날 결혼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결혼을 기점으로 둘의 운명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역설적이게도 엄마는 ‘불행’이라는 장작을 태워 생명력을 얻고, 이모는 ‘행복’이라는 우리 안에서 고통을 얻는다. 살아남은 건 엄마이지만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본 건 이모이다. 엄마는 자신이 행복한 지 불행한지조차 살필 수가 없다. 눈앞에 있는 과제들을 헤쳐나가기 바쁠 뿐이다. 그에 반면 이모는 풍요로움 속 자신의 삶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보았고, 이런 불행을 헤쳐나가지 못할 자신을 마주해 자살이라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안진진은 두 명의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
철저한 계획 속에서 살아가는 남자 나영규와, 안진진의 눈치를 보는 김장우 사이에서 안진진은 갈등하지만 김장우에게 마음이 향하는 것도 잠시,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귀환과 이모의 죽음 후에 나영규와 결혼한다. 은연중 이모부를 나영규에게, 아버지를 김장우에게 투영했던 안진진은 이모의 죽음을 겪고도 왜 나영규를 선택했을까?
그렇다면 반대로, 아버지가 만취해 어머니에게 했던 행동을 김장우에게도 똑같이 되풀이하는 안진진은? 결국 나영규와 결혼하여 이모와 같이 되든 김장우를 선택하여 아버지처럼 되든 안진진은 선택해야한다. 그렇다면 한 평생 아버지로 인해 괴롭던 엄마를 본 안진진은 차라리 이모가 되는 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라고는 하지만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본 안진진은 나영규랑 평온하게 잘 살 것 같긴 하다..)
모순이란 이해의 범주에 미치치 못할 때 나오는 말이다.
아버지의 폭력에도 돌아서지 않는 건 모순이 아니다. 엄마에게 접시를 던지는 사람만 아버지가 아니라 두 손의 손바닥을 포개어 딱 맞아야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하는 다정한 사람도 아버지고, 노획물 중 일부를 내 손에 쥐여 주는 좋은 사람도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진진은 김장우에게 아버지처럼 행동하고서야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행동은 모순이 아니었다. 풍요로움 속에서 괴로움에 얼룩진 이모의 죽음도 모순이 아니었다. 안진진이 김장우를 사랑하면서도 나영규와 결혼한 것도 모순이 아니다. 안진진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는 되풀이되는 실수를 통해 탐구하고, 아버지와 같이 모순된 사람을 이해하면서 성장해 가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내 모순은 바로 내 업(業)이다.
왜 나는 평탄한 길을 두고 자꾸 이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도다.. 이거야말로 모순이지. 오늘도 외쳐본다 "일하기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