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아 오언스_가재가 노래하는 곳
불행한 유년기를 거쳐 고독과 함께 자라온 아리따운 소녀와 그녀를 사랑하는 잘생긴 두 청년이 나오는데, 가독성이 안 좋을 수가 있으랴! 이 책을 무려 3일 만에 호로록 읽을 정도로 몰입했고, 근래 읽었던 책 중에 재밌게 읽은 것으로는 손에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독후감에서 할 말은 해야겠다.
저자는 이 책이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고 했다.
글쎄? 나는 완독을 하고도 도대체 어디에서 이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상황 설정은 그럴듯하다. 아버지의 가정 폭력으로 어머니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이 모두 하나둘씩 떠나고, 어린 나이의 소녀가 혼자 밥벌이를 하면서 성장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시련이 있었겠나, 당연히 외롭겠지. 내가 아쉬운 건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책의 주제로서 전면에 내세운다면 보다 더 카야의 심리상태를 파고 들어 자세한 묘사를 했었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느낀 카야는 홀로 버려진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도 당차고, 야무져서 얘는 선천적으로 감정을 잘 못 느끼는 아이인가? 라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어린 시절 카야가 난생 처음 학교를 가서 놀림을 당했을 때도 속으로는 오히려 반 학생들을 비웃는다거나, 기껏해야 갈매기들 틈에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 게 다였다는 대목에서 그렇게 느꼈다. 카야는 계속 이런 식이다. 한번 울어버리거나 욕을 내뱉고는 모두 털어버리고 극복한다. 누군가는 이런 ‘외로움을 필히 느끼는 상황’에서 점점 더 굳건해지는 카야에게서 대견함을 느끼겠지만, 내가 느낀 카야는 한마디로 캐릭터가 너무 세서 주제가 희석 되어버린 느낌. 즉, 외로운 상황인 것은 맞으나 인물이 외롭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두 번째로, 이것 때문에 소설에 몰입감은 있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읽는데 방해가 된 부분이 있는데. 바로 고전적인 클리셰와 주인공 보정(plot armor)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도 순수함을 간직한 채 성장하고 있는 아름다운 처녀.
인종차별이 난무한 시대에 편견 없이 주인공 백인 소녀를 도와주는 흑인 조력자.
소녀가 기억하기 훨씬 전부터 소나무 같은 사랑을 한 백마 탄 왕자와 마을의 공식 미남이자 잘나가는 쿼터백 출신의 나쁜 남자.
으악~ 너무 전형적이잖아! 고난과 시련을 통해 끝끝내 사랑을 이루는 이 단조로운 플롯을 좋아한다면 지금 바로 들장미 소녀 캔디를 보시라!
하나 더 있다.
자~자~! 이제 교육의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사교육은 그만두시고 아이를 아무도 없는 습지에 데려가세요! 그러면 아이는 온갖 생물을 탐구하고 기록할 것이며 결국에는 이 자료들을 엮어 책을 내고 출판사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아 작가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작가로서 성공한 내용이 소설에 불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되어 조금 비아냥거려봤다.. 아 물론 고난을 겪은 소녀가 성공한 스토리는 상쾌한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책의 흥행을 위해 넣으려는 요소가 좀 과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재판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그래서 결국 체이스를 죽인 건 카야가 맞다. 그것도 우발적 살인이 아닌 계획적 살인이다. 그럼에도 결국 배심원들은 습지의 가련한 처녀 편을 들어주어, 앞날이 창창한 미남 쿼터 백은 말 그대로 개죽음이 된다. 그리고 카야가 죽은 후 테이트는 그 증거들을 불쏘시개로 태우며 사랑하는 여자의 범죄를 영원히 미궁으로 보내버리고 소설은 아름답게 끝낸다.
근데 이게 맞아.. ? 물론 체이스의 폭력 이후 공포에 떨며 살아가는 카야는 너무 가엾다. 책에 적혀있는 것과 같이 마을에 신고한다고 하더라도 누구 하나 이 기묘한 여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해결 방법이 살인이라니, 그리고 다양한 생물과 살아오며 당연히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는 카야가 살인을 저지르는 행동은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 책을 읽으면서도 카야는 절대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캐릭터라고 생각했었다. 아니면 혹시 내가 놓친 살인에 대한 복선이 있었나? 전형적인 플롯을 한번 뒤틀어버리려는 작가의 의도가 있었다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만, 나는 그래서 이 책의 포인트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거 뭐 로맨스야? 스릴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