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샐린저_호밀밭의 파수꾼
예전에 서양 고전문학에 빠져 있던 때가 있었는데, 서점에 가면 줄지어 있는 고전문학책 중 손에 잡히는 것부터 무조건 3장은 읽고 내 취향인지 아닌지 판가름했었다.
그렇게 인연처럼 만난 책이 루이제 린저의 <생 의 한가운데>,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물론, 3장 읽기도 전에 내 취향 아니라 탈락한 책 중에 하나라는 점은 기억이 난다.
'왜 이 책은 겉표지에 그림이나 책 소개가 없는 걸까? 여러 번 들어본 걸 보면 분명 유명한 문학이 맞을 텐데'라는 의문은 있었고, 이 책에 관심이 생긴 지금에서야 저자가 원치 않아서라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민음사 표지는 대체로 세련되지 못했다 생각해도, 호밀밭의 파수꾼은 너무했다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이 책의 첫인상은 그다지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은 책이라는 것이다.
각설하고, 내용에 기승전결이 없다 보니 읽고 나서도 내 취향이 아님은 확실한데, 읽을수록 마치 내가 콜필드가 된 것 마냥 1인칭 시점으로 생생히 그려지는 점에서 이 책이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다 읽고 나서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니?라고 물어보면 '소설 초반 콜필드가 스트라드레이터에게 얻어터진 것과 뉴욕 호텔에서 포주 모리스한테 얻어터진 거요!' 말고는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아 물론, 소설이 나빴다는 뜻은 아니다.
혹자는 콜필드의 우울하고 뒤틀린 성격에 불쾌함을 느꼈을 수 있지만, 나는 읽는 내내 '그럴만하니깐 그랬네'라고 이해하는 거 보면 어쩌면 나도 약간 뒤틀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쉬는 날이면 종종 목적 없이 밖을 나와 지하철에 몸을 던지는 편인데, 어느 날은 도저히 할 게 없어서 친구 집 앞까지 갔다가 그 집 앞에서 갑자기 그 친구 얼굴 보는 게 싫어서 발길을 돌려 경복궁을 가려고 했는데 그 사이 싫증이 나서 하루 종일 지하철 안에서 어딜 가야 내 기분이 나아질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이런 경험들이 콜필드랑 오버랩돼서 좀 웃기긴 했다.
도대체 이 책은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까
16살 주인공은 딱 그 나이에 할 법한 사고방식을 가진 평범한 인물이라 입체적인 느낌도 들지 않는다.
본인은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타인을 대할 때면 사회적 예의와 형식에 가식을 느끼는 건 영락없는 반항기온 청소년이며,
그렇다고 그것대로 철학을 가지고 반항기를 마구 표출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한 인물. 오히려 인물이 너무 현실적이라 이건 작가의 실제 삶(생각)이 투영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호밀밭의 반항아>라는 영화를 보니 저자의 많은 부분이 반영된 인물이 이 콜필드더라.
결론적으로, 위에서 말했듯 재미를 떠나서 소설 자체가 그려지듯 생생하다 보니 홀든의 눈으로 뉴욕 거리를 바라본 느낌이라 꽤나 신선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은 그것이 책이든 영화든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이라면 분명 내가 놓친 부분이 있어 그렇게 큰 감명을 받지 못한 거라 생각한다. 몇 번 더 읽어봐야겠다. 살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이 책이 달라 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