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소시오패스일지도<나, 소시오패스>

M.E 토머스_나, 소시오패스

by 해찌
출처 : 교보문고



소시오패스는 그 단어가 매스컴을 통해 들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 나는 소시오패스에 대해 한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똑똑하지만, 거만하고 자의식이 너무 강한 나머지 본인을 범인(凡人)과 어떻게 해서든 구분하려는 사람'. 역시나 책 읽는 내내 저자의 강력한 나르시시즘이 독서 진도를 방해하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책에서 던지는 몇 가지 주제들은 꽤나 흥미로워서 나는 그 주제에 대한 내 생각들을 이번 독후감에 정리하겠다.


[소시오패스 - 병이라고 할 수 있나?]

책은 저자가 실제로 살아오면서 겪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비슷한 결로 짜깁기하고 소제목을 붙여놓았다.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저 많은 에피소드 중 한 가지 이상은 본인도 해당한다 느꼈을 것이고, '나도 소시오패스인가?'라고 자문했을 것이다. 나도 비슷한 기질로, 타인의 슬픔에 잘 공감을 못한다. 정확히는 슬픔보다는 눈물에 무감각하다. 어릴 때부터 싸우는 중 친구가 눈물을 흘리거나 혹은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어도 울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는 어떤 제스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분노든 슬픔이든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다면 나한테는 무표정으로 서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다만, 왜 본인이 울고 있는지에 대해 말을 해준다면 그 후부터 그 감정에 공감이 들기 시작한다. 타인이 우는 것을 '내 앞에서 질질 짜는 건 짜증 난다' 라고 표현한 이 책의 대목에서 상당히 뜨끔했다.(하지만 난 작가처럼 소시오패스가 아니기에 짜증날 정도는 아니다..ㅎ)


또한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껏 지나쳐온 몇몇 인물들이 각 에피소드에 투영되어 떠올랐는데 그 중 한 명이 고등학교 시절의 반장이었다.

그 반장이랑 나는 고등학교 3년간 같은 반이었는데, 이 친구는 3년간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성적은 항상 최상위였고, 매사에 침착했으며 반 친구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과의 신뢰도도 높은 애였다. 어떤 이미지냐면, 무한도전으로 한참 잘나갔을 때의 유재석 같은 친구였다. 아닌 것 같은 것도 이 친구가 맞다고 하면 여론이 따르는 분위기랄까.. 이 친구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품는 건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았다.

어느 날은 선생 중에 한 명이 이 친구한테 농담반 진담반으로 모욕감을 주었는데도 이 친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대신 욕해주는 친구들한테도 그 선생을 감싸는 호의 마저 보여주었다. 내가 그 친구를 소시오패스 책을 보면서 떠올린 것은 한 가지 사건 때문인데, 고3 한참 대학입시로 다들 예민해져 있던 사이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당시 담임선생이 그 친구 포함 전교 최상위 등수 3명만 방과 후 자택으로 불러 불법 과외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 선생은 고2, 고3 담임이었고, 영어를 가르쳤다. 영어는 직접 과외를 해주고 나머지 과목들은 명문대 재학 중인 친딸을 시켜 매일 과외를 시켜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소문은 사실이었지만, 그 반장 친구는 역시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잘만 등교했으며, 예전과 같이 신뢰가 높고 정의로운 학생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했다. 참 묘하게도 비난의 화살은 나머지 2명한테만 쏟아졌음에도 반장은 그 둘을 전혀 옹호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 얘기에서 가장 잘못된 사람은 우리 담임 선생이지만, 내가 3년간 지켜봐온 그 친구는 그런 과외 제의는 어떠한 유혹이 있어도 거절했어야 정상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사람들을 한 무더기로 거쳤다. 사실상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에서 읽었던 기질은 한 가지 이상씩은 다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이런 기질만을 보고 그 사람들을 소시오패스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 경계는 어디쯤 될까?


[선한마음으로 도덕규범을 따르는 것 ]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본인의 에피소드를 통해 선과 악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평소에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선함이 뭘까? 도덕적인 행동을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결과를 낸 것이 선한 걸까? 혹은 남을 이롭게 하려는 순수한 동기 자체가 선한 걸까? 내가 타인을 돕는 도덕적인 행위를 했지만, 그 동기 자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이건 선의 범주라 할 수 있나?

저자는 사회적 비판의 경계(or 법률) 내에서 감정적 약자를 지배한다. 마치 하이에나가 재미 삼아 연약한 먹잇감을 찾는 것과 같은 포식자 역할을 즐기며, 일반적인 사람들 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본인의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할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불순한 의도와 함께 가면을 쓰고 아무리 정교한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본능적인 거북함과 꺼림직함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싫다. 기저에 타인을 이용해먹으려는 나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고 도덕규범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타인을 배려하고 착한마음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소시오패스에 거북함을 느끼듯,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감동과 진심을 느낀다. 그래서 나도 내 삶을 이런 사람들로 채우고 싶다. 진심 어린 관계에서 주고받는 공감과 위로는 타인을 이용해 성취한 성공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저자는 알지 못할 것 같아 연민의 감정마저 들었다.


[끝으로..!]

나는 나이가 들수록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될 일 구분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쉬웠다. 거짓말은 해서는 안될 일이고 , 남을 돕는 건 해야 될 일이었다. 지금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타인을 돕는 행위가 나중에 나에게 비수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는지 계산하게 된다. 뇌 구조상 이런 고뇌를 하지 않는 소시오패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단순한 삶을 살지 않을까.

이 책은 소시오패스를 통해 이해한 그들의 세계는 생각했던 것처럼 괴물 같은 세계는 아니라는 안심과 이런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소시오패스'라는 단어는 어쩌면 사람들의 도덕성을 획일 화 시키기 위해 조금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집단으로 묶어 붙인 이름일 수도 있겠다. 질서를 위해서!


그나저나 제목이 대놓고 '나, 소시오패스'라서 지하철이든 카페든 읽는 게 조심스러웠다.

낯선 사람들이 이 책의 겉표지를 보고 나를 소시오패스로 취급하면서 본인 탐구를 위해 저 책을 읽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

매거진의 이전글카야 야. 너.. 너무 쎄!<가재가 노래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