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세인트존 멘델_스테이션 일레븐
소설은 강렬하게 시작된다.
배우 아서는 연극 무대에서 리어왕을 연기하는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그 죽음은 그동안 달콤했던 일상의 종말을 알리는 서막이며, 문명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심판이었다.
소설은 마치 아서가 연기하는 연극과도 같다.
여러 인물들이 각 챕터마다 사건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힌 시간 속에서 장면 전환된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객석에 앉아 눈앞에 생생히 공연되는 연극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초반의 조각난 전개는 후반으로 가며 빈틈없이 끼어 맞춰짐과 동시에 지루할 틈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여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과는 다르게 스테이션 일레븐은 희망적 미래를 그리며 종결된다.
이 책의 진가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공포, 억압, 후회, 상실, 혼란 등에도 불구하고, 생존만이 전부가 아닌, 서로 간의 이해, 사랑, 우정, 미덕, 예술을 통한 연결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스테이션 일레븐에서 그리는 종말 이후의 세계는 그리 두려워할 만큼 암울하지 않다.
죽음이 있다면 늘 탄생이 있기에 모든 것이 초기화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잃어버린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