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순수의 시대>

이디스워튼_순수의시대

by 해찌
출처 : 교보문고


살다 보면 마주 보고 있는 기차 레일처럼 나와 똑 닮으면서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 있는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셀 수 없이 스쳐가는 많은 인연 속에서 나와 너무나도 닮은 바람에 한 번의 부름만으로 서로의 존재가 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으로 손을 뻗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관계. 바로 평행관계다.

엘런과 뉴랜드가 평행관계다.


두 사람이 평행선을 그어놓는 데에는 1870년대의 뉴욕 상류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엄격한 사회적 관습과 규범이 한몫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엘런과 재회를 포기한 뉴랜드의 결정은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비단 사회적인 배경뿐만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핵심은 도달 불가능성에 있다. 그것이 뉴랜드에게 엘런과 두 명의 여인(러시워스 부인, 메이)과의 차이다. 물론, 욕망도 중요하다. 슬라보예 지젝은 본인의 저서 '삐딱하게 보기'(자크라캉의 욕망이론을 해석한 책)에서 욕망의 실현은 그것이 충족되는 것, 만족되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욕망의 재생산, 욕망의 순환운동이 된다고 말했다. 즉, 욕망의 실현이 끝이 아니라는 소리다. 뉴랜드의 경우 러시워스 부인에게는 비밀스러운 성적 욕망을 실현했기에 결혼 적령기가 되어 시대상이 요구하는 가장 완벽한 자질을 갖춘 메이를 욕망한다. 이 욕망을 실현하니 이번엔 뉴욕 상류 사회가 가진 틈새이자 자기 자신이 가진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을 발견했으며 엘런으로 하여금 그 결핍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어 사랑에 빠진다. 주체의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기 때문에 뉴랜드는 엘런을 향한 욕망의 실현을 계속 연기함으로써 욕망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비슷한 예로 ‘궁정풍 사랑(courtly love)’이 있다. 궁정풍 사랑이란 사회적 지위가 자신보다 월등히 높거나 기혼자에게 무한한 존경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 궁정풍 사랑에는 사랑의 성취라는 점에서 이미 불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도달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이상화된 이미지를 투영하여 대상을 숭배한다. 같은 맥락으로 엘런도 뉴랜드가 만들어 낸 환상의 산물이다. 뉴랜드는 엘런에 대한 욕망의 실현을 연기하기 위해 접점을 차단하여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반대편 기차 레일로 밀어버렸다. 그 결과로 사실 뉴랜드는 엘런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으며, 둘의 대화는 뉴랜드가 엘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계속 소통의 오류가 발생한다. 결국 뉴랜드는 엘런을 접근 불가능한 대상으로 영원히 붙잡아두기 위해 마지막에 두 사람이 비로소 결합할 수 있는 기회마저 포기해버린다.


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반대쪽 평행선과 같이 곧고 아름답게 뻗어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인생에 끼고 싶으면 있는 힘껏 점프를 하든 진공상태에 충격을 주고 파동을 만들어 엇각을 만들어야 한다. 비록 이 과정에서 상대방의 환상이 깨지고 스스로 상처를 받을지라도 서로 간의 거리를 과감하게 깨야 비로소 ‘우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언제까지나 ‘나’와 ‘너’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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