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빌어먹을 생!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_자기 앞의 생

by 해찌
출처 : 교보문고

난 니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니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별보다 예쁘고 꽃보다 더 고운

나의 친구야

이 세상 다 지워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친구야


정수라 – 난 너에게 (공포의 외인구단 OST)


(뜬금포 노래 추천이지만, 명곡이니 다들 한번 들어보시길.)


이보다 더 사랑을 잘 표현한 노래가 있을까?


가사에는 ‘난 널 기쁘게 하니 연인이 되어줘’ 라던가, ‘내가 널 생각하는 마음에 반이라도 생각해 줘’ 따위의 말은 없다. 그렇다. 완전한 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나의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이 향하는 상대가 있을 뿐이다. 이는 로자나 모모의 마음과도 같다.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모모를 거둬들인 로자와, 추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로자의 곁을 지키는 모모의 마음이 그러하다.


독후감 서론을 사랑 얘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내가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한 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이다. 죽어가는 로자와 그 옆을 지키는 모모를 예전의 할머니와 나에 대입해 본다. 로자 처럼 여장부 같은 풍채를 자랑하던 할머니가 점점 쪼그라들어 내 키와 똑같아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딱 모모의 나이였다. 나는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는데, 죽음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과 또 죽음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한 방을 쓰는 건 여간 편치 않는 일이다. 로자가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모에게 왈룸바는 생사확인 방법으로 입술에 거울을 가져다 대라고 했다. 나의 방법은 검지로 할머니의 콧김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땐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 할머니의 죽음은 모두가 잠든 새벽일 거라 믿었고, 자다가도 할머니의 쌕쌕대는 숨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곁에 가서 검지로 생사를 확인했다.


나는 같은 방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할머니의 죽음을 관장하는 사람처럼 책임감을 느꼈는데, 내가 제때 발견하지 못해 아침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거나 혹은 사자(死者)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밤을 보냈다는 것에 대한 끔찍함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이 불편한 감정은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뒤섞여 떨칠 수 없는 죄책감이 되었고, 내가 할머니의 목숨을 지키는 수호자인지 목숨을 앗아가는 저승사자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그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복잡한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건 휘몰아치는 감정 속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한다거나, 아니면 해볼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한다거나 모쪼록 사람을 우왕좌왕하게 만든다. 어린 모모도 이와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로자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을 때 온전한 정신으로 돌리기 위해 사방팔방 도움을 요청하거나, 로자의 바램대로 두 손 놓고 죽음이 다가오길 그저 바라본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결론적으로 사랑은 좋은 것이다. 최악은 죽음이 찾아올 때 아무도 곁에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어설픈 사랑 말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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