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네이션을 핑계로 꺼내보는 회고<도파민네이션>

애나 렘키_도파민네이션

by 해찌



D Data 무엇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하나, 이를 딱 한 단어로 정리하면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관계 중독? 인간 중독? 경험 중독? 나는 약속에 의존한다. 다시 말하면 주말 일정이 비어 있으면 불안감을 느낀다. 약 2년간 트레바리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셀 수도 없이 많은 만남을 가졌다. 정규 모임에서 파생된 사모임과 그 모임에서 그들의 지인과 만들어진 모임까지. 이들과 한 번씩만 약속을 잡으면 한 달 주말이 모자랄 정도로 매주 낯선 사람들을 마주치고 그들과 어울렸다.


O Objectives 과잉자극이 주는 효과


팬데믹 2020년을 지나, 상황이 개선돼 서서히 다시 자리를 잡을 무렵 멈추지 않고 계속 누군가를 만나는 건 일종의 보상 심리였다. 또, 트레바리를 하다 보면 여기가 아니라면 내가 만날 수 없는 멋진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내가 그들과 동일하다는 것이 착각인지 몰랐을 때 느꼈던 우쭐함도 내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들과 함께한 여행, 원 데이 클래스, 술자리 등등 매주 새로운 경험을 접하면서 발생하는 도파민도 이런 중독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내 시소는 점점 비정상적이게 쾌락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P Problems 문제


끊임없이 잡히는 주말 약속으로 실제 나에게 중요한 일들 가령, 영어 공부라던가 자격증 공부 같은 미래를 위한 준비는 뒷전이 되었다. 어느 날은 주말 약속을 잡지 않고 도서관에 가 책을 펼쳤지만 주말이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에 대한 실망감으로 금새 우울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누구를 만나던, 무엇을 하던 일말의 감흥도 없다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은 얼굴만 바뀔 뿐,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어느 순간부터 관심이 없었다. 주 1~2회씩 몇 달간 봤던 사람도 지금 와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난 할 말이 없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기억에 남는 습관이 있었는지, 특이한 말투가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렇듯 나는 단지 쾌락에 이끌려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관계가 아닌 인스턴트 식의 관계를 계속 맺고 있었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시간을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정작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가족, 친구, 연인에게로부터 내 마음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A Absinence 절제


나의 경우엔 단절이 필요했다. 단순히 새로운 사람들과의 단절이 아닌 인간에 대한 단절이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SNS 계정은 중지 시켰고 모임 출석에는 텀을 두어 주말에는 약속을 잡지 않으려 했다. 이때는 이 책을 읽기 한참 전이라 30일 참기 같이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진 않았고 가능한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려 했다.


M Mindfulness 마음 관찰


몇 주간 SNS도 끊고 주말 약속도 잡지 않았다. 사람과의 단절이 세상과의 단절로 이어졌고, 처음에는 궁금했던 사람들의 소식이 이후로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단절 초반에는 외로움을 잊고 허무한 속마음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 같은 컨텐츠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이도 질려서 그만두고 나니 다시금 단절이 실감 났다. 부재에서 오는 허무함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내 일상에서 타인을 제거하고 나니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외로움과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몰려왔다.


I Insight 통찰


이 부정적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또 왜 오는 것일까? 이 시기 내가 내린 결론은 타인을 통해 '나'란 사람이 정의되기 때문에 이런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 즉,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 내 정체성이 확립 되고 있었다. 특이점은, 단절을 시작했을 때 느껴진 허무함의 원인은 특정인이 아닌 '관계' 그 자체라는 것이고, 이를 통해 나는 사람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관계와 무언가를 해야 하는 행위에 대한 집착이 있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이 두 가지 집착에서 벗어나야 했고,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만으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N Next steps


그렇다고 인간 사회에서 언제까지나 고립되어 살아갈 순 없다. 내가 도파민 디톡스를 하려는 이유는 관계를 모조리 끊고자 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의 관계에 온전히 충실하고, 충만한 행복감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주기적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비워두고, 그 시간을 충실히 보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몇 주간 고립 후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시간은 이전보다 더 즐거웠다. 다음 만남에 대한 기대감도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아져 다시금 새로운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과 타인과 보내는 시간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도록 계속 주의해야 한다. (갑자기 연락 두절 돼도 놀라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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