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_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픽션이 아닌 실제 전쟁을 겪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라 그랬고, 같은 여자로서 얼마나 참혹할지 상상이 가서 더욱 그랬다.
사람들은 전쟁에 열광한다. 전쟁 영웅의 서사, 유쾌한 복수극, 전쟁 중 로맨스..
하지만, 전쟁에 희생된 피해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에는 필히 희생자가 따르고, 그들은 시대를 잘 못 태어났을 뿐이라고.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기에, 우리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전쟁을 마치 역사 책의 한 페이지 기록에 그친 것처럼 취급한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고 나서야 겪어본 적도 없는 전쟁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뉴스에서 스치듯 보도하는 전쟁의 희생자는 '숫자' 일뿐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 신체 일부가 찢겨나간 고통, 보금자리의 파괴 등은 보도 되지 않는다.
아침마다 보는 인터넷 기사의 헤드라인은 전쟁으로 인해 특정 산업의 주가가 상승했다든지, 환율이 오르내린다든지 가 전부다.
며칠 전 차에 주유를 하는 친구는 '요즘 기름값이 너무 비싸, 이게 다 러시아 때문이야 전쟁은 왜 나가지고..'라고 내뱉는다.
지구 반대편에 벌어지고 있는 난리 통은 우리에게는 주유비 상승이나 주가 변동의 원인일 뿐이다.
우리는 전쟁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온 삶은 그들의 비해 너무 편해서. 직장이 있고, 가족과 친구가 있고,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면 몸을 누울 수 있는 아늑한 침대가 있기 때문에.
그게 이 책을 읽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의 이유다.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아름다울 나이에 한국전쟁을 겪으셨다.
나는 어릴 적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는데, 전쟁영화를 좋아하던 오빠와 나는 할머니 방에서 종종 전쟁영화를 봤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돌아누워 잠을 청하셨다.
어느 날은 할머니한테 '할머니도 전쟁을 겪었지?' 물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빨치산들이 집에 쳐들어와서 숟가락이든 바가지든 손에 잡히는 건 뭐든 빼앗아간 게 생생하다고.
나는 전쟁영화를 즐기고, 할머니는 돌아누우셨던 이유이다.
전쟁에 성별이 어딨겠냐만,
여자에게도 전쟁은 참혹하다.
500 페이지 가량에 저술된 끊임없이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끔찍하기도, 감동적이기도, 슬프기도, 기쁘기도 했다.
갓 낳은 내 아이를 조용히 물속에 담그는 것, 적군이라는 이유만으로 저격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 전쟁이 끝나고 마주한 어머니의 얼굴.
어떤 페이지는 읽다가 생략하고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을 짓눌렀다.
그나마 그들도 살아남았기에 낼 수 있는 목소리는, 더욱 비참하게 죽어간 여자들은 목소리 한번 낼 수 없었다.
두고두고 책을 보면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지금의 안락한 내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