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_어쩌면 스무번
파스텔톤의 겉표지와 '어쩌면 스무번'을 '어쩌다 스무살'로 읽어서 풋풋한 연애소설인 줄 알았다.
편혜영 작가는 줄곧 그로테스크한 소설을 쓰는 작가인데, 이번 작품은 그 정도는 아닌듯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친숙한 서스펜스 - 칼을 든 사이코패스가 특정 인물들을 압박하는 등의 - 의 플롯은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치 않은 상황에 맞물려 뒤틀어진 데에서 오는 섬뜩함을 느꼈다.
예를 들어, 옥수수밭이 펼쳐진 외진 곳으로 이사 온 부부와 보안업체 직원과 같은 상황인데, 부부는 치매에 걸린 장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남의 눈을 피해 시골로 왔다는 배경이 있기 때문에 보안업체의 영업에 긴장감이 조성된다. 반 협박에 가까운 영업방식이 실상은 보안업체가 줄곧 써먹고 있는 노련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소설 속 8가지의 단편 모두 평범한 사람들의 이런 상황이 만나 다소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연출하여 독자로 하여금 묘한 불쾌감을 주는 작품이다.
대단한 설정이 있는 소설이 아니기에, 주변을 둘러보고 실상을 파헤친다면 이보다 더 불쾌한 사람(or 사건)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런 상황들을 실제로 마주할 일이 있었음에도 이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이 역한 감정을 왜 느끼지 못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종종 이런 불쾌한 상황에서 마땅히 느껴야 하는 감정들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는 어릴 적부터 부정적이거나 불쾌한 감정을 갖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것이라 교육을 받은 이유가 크다.
나와 같이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 것 자체를 외면하려고 하는 걸 '무드 쉐임(mood shame)' 이라고 하는데, 소설에 대입해 보자면 두 번째 단편인 '호텔창문' 에서 운오가 죽은 사촌형에 대해 전혀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 부분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운오라도 죽은 사촌 형과 큰어머니께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끼지 못할 거란 예상과 만일 나라면 남의 시선을 신경 써서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형을 잃은 슬픔을 표출했을 거라는 묘한 불쾌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