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가르치기 전에 당신 삶의 철학과 존재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보라
진로 교육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진로 검사지 주고 체크해 달라고 했다. 어떤 학생이 손을 들고 “분포도를 중간으로 해 줄까요?, 아니면 왼쪽으로 빼줄까요?”라고 질문한다. 빵 터졌다. 이 바닥에 유명한 일화다.
심지어 진로활동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상당수 청소년이 진로 검사지 적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점차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기까지 한다. 진로 교육이나 활동이라고 하면 청소년들에게 진로 검사지 돌리고 직업 유형을 나누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 강사 불러 강의 듣게 하고 비전선언문이나 자기사명서 비슷한 것을 쓰게 하고 발표하고 마무리 짓는 전형적인 프로그램들이 많다.
우리나라 진로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는 심리적성 검사만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매년 진로 교육하면서 연중행사처럼 검사지 나누고 유형을 알아본다. 학생들은 검사지 측정 내용이 진로활동 전부로 여긴다. 홀랜드와 같은 직업 검사지는 상담 시설부터 청소년활동시설, 복지시설 등 아동과 청소년기관에서 진로 프로그램 있을 때 진행한다. 진로 검사지가 문제가 아니다. 진로 검사만 하고 그 외 활동이 없다는 게 문제다.
학교에서 ‘진로와 직업’ 교과 시간은 자습 시간이 되고 있으며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체험학습은 단순 견학이나 일회성 행사 위주로 이루어져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러한 진로 교육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현장은 진로코칭, 진로 학습에 관한 사업은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사교육업체에서 개발된 프로그램 상당수는 프랜차이즈 형태로 만들어 판매한다. 업체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진로 강사과정을 만들어 홍보하여 사람을 모아서 수강료를 내고 과정을 이수하면 강사가 된다. 사기업에서 만든 키트나 검사지 사용법과 프로그램 과정을 이수한 강사들에게 제공한다. 회사는 남는 장사다. 키트나 프로그램도 회사에서 판매하면서 운영을 하기 때문이다. 하부 단위에서 돈을 들여 업체의 자격을 취득한 강사들은 회사의 커리큘럼이나 키트, 검사지 등을 사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강사비를 받는 구조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청소년 진로에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는 정확하게 안다. 청소년의 참여 없이 어떤 규격화된 틀에 맞추어진 일방적인 교육이나 안내는 긍정적인 진로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만들 개연성이 크다.
진학, 취업을 포함한 진로를 위한 청소년들의 교육이나 활동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청소년 진로가 ‘사람답게 산다’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하곤 한다. 자기 삶을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성찰이 없는 교육이 난무한다. 청소년 자신의 삶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세상의 경쟁과 틀에 따라 누군가도 모르는 누군가가 설정한 우선순위에 매몰되어 당사자를 매우 불안하게 하는 세상이다.
도대체 삶을 잘 살아야 할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당신은 아는가? 고3이 되면 당연시되고 있는 서울권에 스카이로 통하는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우선순위, 대학 졸업 시즌이 되면 당연히 고시나 공시를 패스하거나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전문직이 되어야 하는 상위 순위에 편입되어야 한다.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에 따라 정해진 우선순위에 들어가지 못하고 누군지도 모르는 타자가 설계한 공식에서 멀어지는 순간 청소년기를 넘어가면서 불안은 극대화된다.
최근 “숨진 청년 이수철 씨 원룸엔 이력서 150장만 '수북'”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더 좋은 스펙을 쌓아가며 살고 싶었습니다. 제 꿈을 위해 노력도 했고요. 아직 철이 덜 들어서일까요? 저는 무섭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마지막으로 남긴 20대 취업준비생의 죽음은 ‘청년 고독사’의 한 단면으로 보인다. 그는 외로웠고, 가난했고, 취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울했다. 원룸에서 생활했던 어느 청년의 가장 큰 목표는 취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머물던 방에는 빈 소주병들과 그 사이로 수북한 종이 뭉치가 발견됐는데 생전 작성해 둔 이력서 150여 장이었다.
청소년 참여를 주장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람은 자기 삶에, 자신의 공간에 참여해야만 안정성을 갖는다. 내가 참여하지 못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지시와 관리로 만들어지는 인생은 비참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하다. 고시를 보거나 의사와 같은 전문직을 가져도 불안이 계속 증대되는 이유다. 최근 청년들 대상으로 연구 중 창업한 청년들과 깊게 대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안정성은 공시를 패스하고 대기업이나 전문직을 갖고자 경쟁에서 이기는 과정으로 여겼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가치를 알았을 때 안정감을 크게 느낀다고 했다.
공무원이 되는 것도 좋다. 교사가 되어도 좋다. 하지만 그 일이 자신의 삶에 어떤 고민과 성찰 없이 사회적인 경쟁에서 무조건 살아남기 위해서 이기고자 선택한 길이라면 불안이 커질 개연성이 있다는 것. 프리랜서로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어도 안정감을 가지고 행복할 수 있는 청년들이 의외로 많았다. 청년들이 안정성을 갖는 이유는 현재 하는 일 안에 의미가 있고 나름의 비전을 향해 간다는 것을 자신이 안다는 거였다. 청년 자신의 선택 가운데 참여하고 있는 게 그 본질적인 이유였다.
어떤 직업을 가져도 관계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직업이나 진학에 대한 ‘참여’ 과정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참여는 선택이 요체다. 선택하기 위해서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는 결국 가장 바닥에 고민과 성찰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성찰 없고 이유 없이 그 누군지도 모르는 자들이 순서를 정해 놓고 최상위의 것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을 할 때 불안은 가중되기 마련이다.
청소년이 참여하며 안정감을 갖고 삶을 살 수 있는 진로를 찾는 방법이 무엇일까? 어쩌면 단순하다. 앞에서 비판했던 것을 거꾸로만 하면 된다. 진로 검사지를 적당히 돌리거나 그만하시고 될 수 있으면 현재 상황을 직면하게 하고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삶과 함께 당사자가 존재하는 공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쟁에 저항하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하고 싶은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질문과 선택의 과정에서 “왜 이 일을?”. “왜 이 직업을?”, “왜 이 공간?”을 선택했는지 그 근본의 이유를 찾고 답하고 선택하도록 도와야 한다. 청소년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로 교육, 활동은 단편적인 프로그램을 넘어서 일상의 삶에서 상시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 안에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로는 진학과 직업을 모두 포함한 우리 삶 전체를 뜻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진로’다. 간혹 종교 부흥회와 같은 강의 하는 유명인 불러서 나처럼 살면 모두 성공한다는 식의 단편적 프로그램으로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나와 다른 또 다른 사람을 동경하며 욕심을 극대화하는 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본질은 자신의 삶 자체에 녹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반드시 물어야 할 게 하나 있다. 나는 진로 교육의 시작이고 진로활동의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과 만나는 부모나 교사, 청소년지도사 등 기성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 삶에 대한 철학이나 가치들이 삶 자체에 녹아 있어야 한다. 그것과 연동되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자연스럽다. 이건 또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를 설명해 보면 좋겠다.
범죄나 나쁜 일 제외하고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무방하다. 내 삶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내 앞에 있는 청소년, 청년에게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우선 찾아보라는 말이다. 청소년들 만나면서 교육하고 지시하는 일을 그만하자. 모든 이들이 청소년을 만나면 가르치려고만 하는데, 자신이 진정으로 자녀나 학생들에게 본받게 하고 싶은 자신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는 일이 진로 교육의 요체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녀나 학생이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당신의 삶에 그 중요한 가치와 이유는 무엇인가?